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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의학에세이[6]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6]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4.06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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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고대 의학의 발전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디오스코리데스’와 같은 시대에 있었던 또 한 사람의 의약품 조제 선구자는 ‘갈렌’이었다. ‘갈렌’은 의학과 약학, 양쪽에서 모두 이름이 잘 알려진 약물학자이다. 특히 ‘Galenical preparation’이라고 하면 약물 조제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약학 분야에서 유명하다.

오늘날 콜드크림이라고 일컫는 화장품도 ‘갈렌’이 처음 만든 것이다. ‘갈렌’은 서기 130년에 태어나서 200년에 죽을 때까지 로마에서 약학과 의학을 가르쳤는데 그의 가르침은 서양에서 여러 가지 의약품을 섞어 조제하는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중세에 이르러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기본 교재로 무려 1500년이나 사용되었다. ‘갈렌’은 당시에 이미 의약품 상호 배합 시의 배합금기와 주의사항을 간파하고 이를 후학들에게 자료로 남겼다.

그리스나 로마의 의학적 지식이나 약물사용 방법을 이어받은 아라비아의 연금술사들은 그 기술을 사용하여 과학으로써의 근대적 약리학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기원후 8세기에서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아라비아 약물의 황금시대에 이들 연금술사들은 추출, 증류, 발효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농후하고 순수한 여러 그룹의 약물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이라크의 바그다드는 의학과 약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문구를 유심히 살펴보면 바그다드 거리의 이름 없는 조그만 약국에서조차 비싼 그릇, 향유, 연고, 분말약, 수정 그릇에 든 시럽, 300종이나 되는 진기한 향료로 만들어진 포마드 등 풍부한 재고가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당시의 번영 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아라비아인들은 효과가 있는 새로운 약품을 많이 만들었으나 한편으로는 쓸모없는 약물들도 많았다. 당대의 위대한 의사이자 이후 수백 년 동안이나 의학 교과서로 사용된 의학전범(醫學典範) '카논(Canon)'을 저술한 ‘아비켄나’조차도 겉에 금이나 은을 입혀 보기에만 아름답고 치료 효과가 전혀 없는 환약을 처방하거나 피부병 치료에 수은연고를 사용하곤 했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
고대 로마의 목욕탕.

당시의 그리스와 로마의 목욕탕 문화와 이에 따른 상수도, 하수도의 발달은 양호한 위생환경을 제공하여 공중위생이 잘 유지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로마의 대중목욕탕은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처음 지어졌는데 제정 말기에 이르러서는 로마 시내에만 모두 850여 개의 대중목욕탕이 자리를 잡을 정도로 번성했다.

그중에서도 ‘카라칼라’, ‘아그리파’, ‘네로’라는 대중목욕탕은 놀랄 만큼 크고 호화로웠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대지만 12만4,400㎡에 광대한 욕실과 도서실, 경기장, 상가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한꺼번에 3,000명이 목욕할 수 있는 공중목욕탕을 지었는데, 이를 유지하고 특히 깨끗한 물을 안정되게 공급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져 로마에서는 일찍부터 상, 하수도가 크게 발달했다.

이처럼 목욕탕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설치하고 이에 따른 하수도까지 잘 정비되어 공중위생 환경이 매우 양호하게 유지되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로마제국이 몰락의 길로 들어선 후에는 이러한 위생적인 환경이 모조리 파괴되고 만다.

이후 중세에 이르면서 공중위생이 급속히 악화되자 온갖 전염병, 특히 페스트나 매독 같은 갖은 역병이 창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약물과 처방을 망라한 ‘디오스코리데스’의‘De Materia Medica’나 ‘갈렌의’‘Galenical preparation’ 같은 의학 교과서는 만연하는 질병으로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후세의 유럽 의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의학과 약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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