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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의학에세이[9]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9]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4.26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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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의학과 약학의 과학적 태동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지금부터 670년 전인 14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페스트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역병, 즉 전염병들로 인한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다.

중세에 이르러 로마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목욕탕 문화가 점차 퇴보하는데, 그 이유는 대도시 부근의 연료용 나무가 고갈되어 온수를 사용하기 어렵게 된 것도 한 몫 했다. 몸을 씻기 어렵게 되자 얼굴의 불결함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고 진한 향수를 사용함으로써 악취를 은폐하고자 했다. 이처럼 남녀를 막론하고 향수사용이 유행하게 된 것은 오로지 목욕문화의 퇴보 때문이었다. 공중위생이 나빠지면서 각종 피부병이나 페스트, 매독 등 역병이 창궐하기 좋은 여건이 조금씩 마련되어 갔다.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를 여러 번 바꾸어 놓을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했다.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 아테네를 멸망시킨 일등공신 중 하나는 장티푸스로 추정되는 아테네 역병이었고, 중세의 흑사병은 유럽의 발전을 늦추고 원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홍역은 대항해시대에 백인들에 의해 인디언들에게 전염된 다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거의 절멸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 즉 페스트의 맹위로 이후 6년간에 걸쳐 당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인 2,500만 명이 사망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길거리마다 시체가 켜켜이 쌓이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술에 취한 채 자기가 지은 죄를 참회함으로써 신의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밤낮으로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참회의 뜻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지만 이런 방법으로 병마의 마수로부터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제철을 만난 쥐 떼는 극성을 부리고, 일가족뿐만 아니라 한 마을이 모조리 전멸하여 황폐화된 도시가 즐비했지만, 당시의 의학은 페스트의 원인과 매개체, 치료법 등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인간을 참변으로부터 구해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의학교에서조차 점성술을 진단법으로 가르치고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은 “아브라카다브라”라고 쓰인 멋진 카드를 목에 걸고 병마가 물러가기를 기대했으나 덧없이 무수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중세의 페스트로 인한 비극을 그린 삽화
중세의 페스트로 인한 비극을 그린 삽화

이후 역병이 계속되면서 해가 갈수록 자연히 유럽의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력도 부족해졌다. 매년 계속되는 전염병이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간파한 당시 사람들은 저마다 병에 대한 증상과 진행 과정에 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다. 이들의 기록은 훗날 전염병의 특성과 분포, 그리고 진행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됐다.

기록에 의하면 전염성 질환의 지역적 분포와 유행 정도뿐만 아니라 역병에 후속되어 일어나던 대규모 불황이나 이의 지속기간도 전염병이 만연된 지역과 그 정도에 일치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의 상황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내륙의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 결과, 유럽대륙 내부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력이 비교적 잘 유지되던 이베리아반도의 국가들은 8세기에서부터 15세기에 걸쳐 무슬림이 지배하던 스페인 영토를 되찾기 위해 벌여온 국토회복운동(레콘스티카)을 거의 완수하게 된다.

이 국가들은 자연히 각종 전염병이 만연하던 내륙보다는 바다 건너 새로운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과 ‘마젤란’의 세계 일주에 의한 신항로 개척 등으로 이후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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