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의학에세이[13]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13]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5.25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2. 현대의학으로의 발전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은 1806년 제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귀하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을 퇴치했습니다. 우두 접종법으로 인해 인류는 귀하의 존재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들은 역사 속에 천연두라는 끔찍한 질병이 존재한 바 있으며, 또한 귀하가 그것을 박멸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향과 런던을 오가며 천연두 백신 연구를 지속하던 제너는 1821년에 영국 국왕 조지 4세의 특별 시의로 임명되는 영예를 누렸다. 고향 버클리에서는 시장과 치안판사를 역임했다. 그러다가 1823년 1월 25일 제너는 갑자기 뇌졸중을 일으켰는데 이튿날인 26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러나 우두보다 앞섰던 천연두 예방법으로 인두법이 있었다. 인두법(人痘法)은 면역물질을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서 얻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체액을 성한 사람에게 상처를 내고 옮겨주는 방법으로 면역물질을 전달했다.

온갖 풍문이 범람하던 당시의 종두를 풍자한 그림.
온갖 풍문이 범람하던 당시의 종두를 풍자한 그림.

인두법은 오래전부터 인도에서 전래된 전통적인 천연두 예방법이었는데 12세기 무렵에 이르러 중국 송나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동아시아를 비롯한 중국과 교류가 있던 주변국 곳곳으로 전래되어 갔다. 그리고 17세기 무렵부터는 중국 청나라에서 인두법이 한의학의 한 분과로 자리 잡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두법(牛痘法, cowpox)은 소마마를 앓는 소에게서 면역물질을 얻었기 때문에 우두란 이름이 붙여졌다. 18세기 말 영국의 ‘제너’가 종두법(우두법)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서양에서도 이처럼 동양으로부터 전래된 인두법으로 천연두를 예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면역을 얻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론적, 과학적 규명이 불가능했으므로 대중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1537~1615).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1537~1615).

조선 역사 속에서 ‘허준’이 등장하게 된 배경도 바로 천연두 덕분이었다. ‘허준’이 ‘양예수’를 제치고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된 것은 바로 광해군이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허준은 광해군의 천연두로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함으로써 선조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었고, 결국 ‘동의보감’을 쓴 명의로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실제로 허준은 천연두를 다른 전염병과 명확히 구별해 냈다.

조선에서는 18세기에 박제가’에 의해 인두법이 소개된 후 많은 한의사가 이를 시술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어렸을 때 천연두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 후에도 여러 명의 아이를 이 병 때문에 잃기도 했다. ‘정약용’은 인두법 전반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를 널리 소개하고 보급하고자 노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