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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신작소설(3)] 앙드레 사랑
[신덕재 신작소설(3)] 앙드레 사랑
  • 신덕재 중앙치과의원장
  • 승인 2018.08.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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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중앙치과 원장
신덕재 중앙치과 원장

 나의 집 주소는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508-9호 현대빌라 302호다. 지층은 여덟 대의 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고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두 가구씩 사는 3층짜리 빌라다. 그러니까 여섯 세대가 산다. 빌라 전면에는 12m 도로가 접해있고 이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자동문과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창살 같은 대문이 있다. 주차장 문과 대문을 제외하고는 빌라 전체가 2m 높이의 담이 쳐져있다. 담 네 귀퉁이에는 누구를 감시하는지 빨간 경보장치가 하루 종일 반짝이고 있다. 집 내부에는 대추나무, 모과나무, 주목, 단풍나무, 감나무, 소나무가 모양 있게 서 있고 그사이에 철쭉, 영산홍, 넝쿨장미, 목단 등이 큰 돌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뒷담 너머는 대성산이 연이어져 있어 마치 숲속의 별장과 같다.
 내가 사는 302호는 널찍한 거실과 화려한 욕실이 있다. 거실은 나의 즐거운 놀이터이다. 50인치가 넘는 텔레비전, 온갖 술병이 즐비한 장, 언제 보았는지 모르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된 책장 등, 많은 장식물은 내가 뛰고 숨고 재주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거실이 좋다. 내가 이해 안 가는 곳이 바로 욕실이다. 욕실에는 어리어리한 욕조와 변기와 세면대가 한 조로 되어있다. 욕실이라면 목욕이나 하고 용변만 보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치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바닥은 반질반질하고 딱딱한 이태리 대리석으로 돼서 마음대로 걸을 수도 없고 디디는 촉감도 나쁘다. 용변기는 높고 커서 잘못하다가는 용변기 통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용변기에다 일을 보지 않고 욕실 바닥에다 용변을 본다. 용변을 마치고 나면 나는 습관적으로 앞발로 흙을 덮는데 바닥이 미끄럽고 해반닥하여 수 없이 헛발질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억울하게 도둑의 누명을 쓰고 태어났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우리를 죽이는 자는 사형을 당할 만큼 대단한 존재였으며 모든 조형물과 벽화에 우리가 빠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였다. 지금까지도 이집트 유물에는 우리가 귀중한 보물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엄마는 도둑으로 몰려 나를 도둑 새끼로 만든 것이다. 원래 나는 대성산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단독주택 보일러실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겨울철에 춥지 않고 누구의 훼방도 받지 않는 안온한 곳이다. 여름에는 대성산에서 먹이를 구하고 겨울에는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명당자리다. 그리고 보면 우리 엄마는 똑똑한 엄마였나 보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도둑이었다. 우리 엄마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다만 겨울에 음식을 구할 수 없을 때 집 주위의 지저분한 곳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뒤져 먹이를 구하곤 했다. 이런 것이 도둑질이라고 하면 도둑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정말 도둑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도둑놈, 사기꾼, 협잡꾼 등의 소리를 들은 것은 내가 살던 단독주택이 헐리고 그곳에 다세대 주택이 생긴 후였다. 나는 나의 보금자리인 보일러실이 없어질 때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아침 굴착기라는 무서운 기계가 굉음을 내며 지하실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들어와 한 번에 보일러며, 벽돌이며, 콘크리트 덩어리를 움켜쥐고 올라갔다. 그때 나는 생후 2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위험을 감지하고 급히 피하라고 악! 악! 짧고 급박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삼지창 같은 묵직한 굴착기가 보일러실을 덮쳤고, 보일러실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 아아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엄마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 후 나는 엄마의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다행히 첫 번째 굴착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침입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본능적 민첩함으로 엄마처럼 흙과 콘크리트 더미에 범벅이 되지 않고 굴착기 위에 올라앉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위험하고 무서운 순간에도 세상에 나와 보니 신기할 뿐 아니라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나는 바가지 같은 굴착기에 올라앉아 몸을 추서러 넌지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큰 웅덩이가 생겼는데 요란한 굴착기 소리와 함께 동네 사람들이 주위에 둘러서 있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때 하늘이 180도 도는 듯하더니 굴착기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굴착기 운전기사의 언짢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건 도둑고양이 새끼 아냐? 재수 없게 첫 삽부터 도둑고양이 새끼가 나와!”
 “야! 없애버려! 젠장 재수 없게 스리.”
 십장인 듯한 사람이 인정머리 없게 센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거칠고 퉁명한 소리로 봐서 나에게 매우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아주머니가 황급히 나서며.
 “아저씨! 버릴 거라면 우리 주세요. 집에 데려가 키우게요!”
 “재수 없는 도둑고양이를 무엇에다 써요?”
 “집에 쥐가 많아서 그래요.”
 “도둑고양이는 길들이기 힘들어요.”
 “괜찮아요. 묶어서 기르면 돼요.”
 아까보다 말소리가 부드럽고 거칠지 않은 것으로 봐서 급박한 위험은 지나간 듯했다. 아주머니 손에 넘겨지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정신은 용궁에 갔다 온 듯 어찔어찔하고 가슴은 벌렁벌렁했다. 마음을 진정하고는 죽음을 면한 것으로 천운이다 싶어 다른 때와는 달리 앙탈을 부리거나 저항을 하지 않고 순순히 아주머니를 따랐다.
 그 아주머니는 아랫집 쌀가게 아주머니였다. 쌀은 그녀의 생명이다. 이런 쌀을 쥐로부터 지켜주는 고양이를 공짜로 얻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굴착기 운전기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재수 없는 놈일지 모르나 쌀가게 아주머니 쪽에서는 재산을 지켜주는 파수꾼인 셈이다. 하여간에 우여곡절 끝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쌀가게 아주머니 집에 오게 됐다. 아아앙, 엄마는 어디 갔을까? 나는 길게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렸다.
 쌀가게 집에서의 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나날이었다. 첫째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은 목의 나일론 줄이다. 단단한 나일론 줄은 대단한 것이어서 끊어지거나 풀어지는 경우가 없다. 어쩌다 내가 멀리 뛰기라도 할라치면 나일론 줄은 사정없이 나의 목을 잡아당겨 조이고 숨 막히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조용히 있는 순종뿐이다.
 둘째로 힘든 것은 하루에 한 번 주는 밥이다. 엄마와 같이 있을 때 내가 주로 먹은 음식은 소박하고 담백한 엄마의 젖과 신선한 고기였다. 그런데 쌀가게 아주머니 집에 오니 쾌쾌한 냄새가 나는 국물에 밥을 말아 주는 된장국밥은 우리 엄마의 것과는 딴판이어서 먹기에 역겹고 구역질이 날 정도다. 거기다 더 먹기 힘든 것은 혀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된장 국물이 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소금과 무슨 원수가 졌기에 음식마다 그렇게 많은 소금을 치는지 모르겠다. 음식이 짜기만 하면 다행이다. 고추장 국물에 말아 주는 밥은 맵고 짜고 쾌쾌하고 떫다. 정말로 이것을 먹으라고 주는 것인지 먹고 죽으라고 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나를 자기 식구로 아는지 아니면 사람이 먹는 것이니 너도 먹어야 한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래도 굶어 죽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국물은 안 먹고 밥만 살짝살짝 골라 먹었다. 그때마다 쌀가게 아주머니는 나를 미워했고 나무라고 했고 심지어는 나를 때리기까지 했다. 쌀가게 아주머니가 굴착기 기사로부터 나를 구해주고 이곳에 데려올 때는 선량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었지만, 이처럼 고통스러운 쌀가게 생활을 하다 보니 쌀가게 아주머니도 나와 같은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항상 고통스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쌀가게가 길옆에 있는 관계로 지나가는 아이들이나 주인아주머니가 새우 냄새가 나는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었다. 새우냄새가 나는 과자는 맛난 냄새뿐 아니라 달작지근하고 고소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있다. 매일 지겨운 된장국밥만 먹다가 어찌하여 이 과자 하나를 주워 먹고는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임금님의 수라상에나 올라가는 음식 같았다. 그래서 바스락 소리만 나도 과자봉지 소린가 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곳을 응시하곤 했다. 어쩌다 과자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는 날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횡재였다.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 얼마를 지나, 나도 이제는 쾌쾌한 냄새의 된장국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쌀가게 아주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만나 이야기하는 소리를 눈치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된 어느 날, 쌀가게 아주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
 “아니, 글쎄, 건축업자가 사기를 쳤대며?”
 “집 산 사람들이 잘못하면 거리로 나앉게 됐대!”
 “원주인도 은행 빚 때문에 집을 내놓아야 한다던데.”
 “도둑놈이지, 돈도 한 푼 없는 놈이 남의 땅에 무슨 놈의 집을 짓는다고? 땅 주인 미니네도 그렇지, 자기가 돈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살 일이지. 다세대 주택을 지면 얼마나 떼돈을 번다고 사기꾼 같은 놈한테 땅을 턱 내놓아 집을 짓게 한단 말이야.”
 “미니네도 너무 욕심을 부린 거지 뭐.”
 “그러나 저러나 분양받은 사람들이 큰일 났어. 근근이 벌어서 집 한 칸 장만하려고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장만했는데 땡닢 하나 건지지 못하고 거리로 나앉게 됐으니 어떻게 하면 좋아! 걱정이네.”
 주인 쌀가게 아주머니와 동네 아주머니와의 이런 이야기 참뜻을 알게 된 것은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나의 옛 주인이었던 미니네가 단독주택을 헐고 다세대 가구를 짓기로 한 것은 무슨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고사장 때문이었다. 고사장은 미니네 아저씨에게 그 땅에다 다세대 주택을 지으면 미니네가 지금 사는 평수보다 더 크고 깨끗한 집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돈도 2~3억을 벌 수 있다고 했다. 3층은 주인이 살고 지하와 1, 2층을 분양하면 적어도 그 정도는 남는다는 것이다. 미니네 아저씨는 계산을 해 보았다. 요사이 평당 분양가가 600만 원을 하니까 23평짜리로 짓는다면 1억3천만 원이 된다. 그런데 실제 건축비는 평당 400만 원이 안 되니 평당 200만 원이 남는 꼴이다. 그러면 23평에 200만 원, 다시 6세대면 2억4천만 원이 남는다. 새집 생기고 2억이 넘는 돈이 남는다면 이런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거기다 요사이 하루가 다르게 부동산값이 올라가니 집만 지으면 분양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 아닌가?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집을 짓기만 하면 된다. 결국 미니네 아저씨는 고사장에게 다세대 주택을 짓도록 허락을 했고 고사장은 건축비의 일부라고 하면서 미니네 땅을 은행에 근저당 잡히고 돈을 2억 빌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건축비는 분양하는 대로 돈을 받기로 했다. 그러니까 미니네 아저씨도 고사장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약 7억짜리 건물을 짓게 된 셈이다. 나는 억(億)이라는 돈의 가치를 알 수 없지만 희한한 것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어떻게 억대의 집을 지을 수 있으며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공사는 도둑놈이니 사기꾼이니 하는 말로 결말이 났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나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내가 도둑놈의 누명을 쓰고 태어난 데 대해 미니네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정말로 도둑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고사장이나 미니네를 우리 엄마와 비교하면 우리 엄마는 도둑 축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도둑의 누명을 쓰고 태어났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어어엉! 어어엉! 소리쳐, 항변한들 사람들은 나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고 다만 시끄럽다고 야단만 쳤다.
 미니네 사건으로 시끄러운 때에 원장님 사모님이라는 분이 우리 쌀가게에 왔다. 내가 기억하기에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마 전화로 쌀을 구입하는 모양이다. 전화로 쌀을 구입하면 쌀가게 아저씨가 오토바이로 쌀을 배달하곤 한다. 원장님 사모님은 대단히 미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원장님 사모님이 예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원장님 사모님 남편이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성형외과에 돈만 갖다 주면 미인으로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어머, 고양이 예쁘다. 아줌마, 이 고양이 우리 주세요?”
 “왜 고양이 기르고 싶으세요? 도둑고양이인데 쥐 잡으라고 갖다 놓았는데 쥐는 잡지 않고 울기만 해서 귀찮던 판인데 잘 되었네요. 한번 데려다 길러 보실래요?”
 이는 쌀가게 아주머니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이고 나를 모함하는 말이다. 사실 내가 쥐를 잡을 줄 몰라서 못 잡는 것이 아니다. 목에 줄을 매 놓고 쥐를 잡으라고 하면 마치 소보고 쟁기 없이 논 갈라는 소리와 같지 않은가? 쥐를 잡지 못하게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마치 내가 무능해서 쥐를 못 잡는 양 원장 사모님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쌀가게 아주머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아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사실 내가 쥐를 잡지 않고 마냥 잠만 자는 듯하나 내가 그 집에 있으므로 해서 쥐들이 얼씬도 못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쌀가게 아주머니가 무어라 해도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실 내가 없으면 쌀가게 아주머니가 아쉽지 내가 아쉽겠는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쌀가게 아주머니가 너스레를 떨면서 거짓말로 나를 못난 놈으로 만드는 뒤에는 나를 원장 선생님 사모님에게 주고 싶지 않은 속내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어렵게 얻어다가 지금까지 키웠는데 공짜로 주자면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짐짓 나를 못난 놈으로 만들면 사모님이 나를 안 데려갈지 모르니 거짓말이라도 해서 한번 꼼수를 부려 보자는 심산이다. 아무리 꼼수라 해도 내가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이다. 그러나 꼼수를 부려 본들 원장 사모님이 나를 원하면 그만이다. 원장 사모님 네가 원체 오래된 단골이니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다. 행여 거절을 했다가 사모님의 심기를 뒤틀리게 하여 어느 날 갑자기 쌀 주문을 끊기라도 하면 나 하나 아끼다 큰 단골을 잃을 판이니 외양간 말뚝 하나 아끼다 황소 잃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 하나 바보 만들어 원장 사모님에게 일찍 주어버리면 이것도 일종의 로비가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니네 집에서 쌀가게 아주머니 집으로 온 것처럼 또다시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 댁인 현대빌라 302호로 오게 됐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사모님을 서 여사라고 불렀다. 밖에 사람들은 그녀를 사모님 사모님하고 불렀지만 얼마를 지나고 보니 사모님들끼리 모인 곳에서는 우리 주인을 서 여사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현대빌라 302호 아니 서 여사 댁에 오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나의 목에 매여 있던 줄이 없어지고 이제는 쾌쾌한 냄새 때문에 골치를 앓지 않아도 되게 됐다. 식사도 나에게만 주는 정식 메뉴가 따로 있었다. 이것은 쌀가게에서 먹던 밥이 아니라 사람들이 먹는 식사와 같은 것이다. 아침저녁 식사가 달랐으며 나의 입맛에 잘 맞는 식사였다. 새우 냄새나는 과자 같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가져다주던 신선한 고기와도 같았다. 미국인가 어디선가 가져온 애완동물용 식사라고 했다. 아마 못 먹는 나라 아이들이 먹으면 지금 그들이 먹는 것보다 더 맛이 있고 영양가가 많은 음식일 것이다. 하여간에 나는 못 사는 나라 아이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게 됐다. 아아앙-.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같이 이런 음식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나에게도 이름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있듯이 나에게도 사람과 같은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사람이 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다. 앙아앙! 아앙앙!
 나의 이름은 “앙드레”이다. 서 여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내 이름의 뜻은 “앙증맞은 드레”이다. 즉 앙증맞다는 말과 드레라는 말의 합성어인 것이다. 앙증맞고 됨됨이가 점잖고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매우 멋진 이름이다. 사람들도 이처럼 고운 이름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서 여사가 이처럼 뜻깊고 우아한 이름을 처음부터 짓고 싶어서 진 것은 아니다. 서 여사는 국어학자도 아니고 예쁜 이름 짓는 작명가도 아니다. 처음에 나를 보고는 나의 모습이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누구와 닮았고 순수한 우리 말보다는 외국말이 멋있어 보여서 앙드레라는 이름을 지었다. 진짜로 나의 털은 흰 바탕에 검은 점과 누른 점이 잘 어울려져 있어서 유명한 디자이너가 입는 옷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서 여사의 큰 실수였다.
 서 여사가 나의 이름을 진 후, 서 여사 친구 사모님들로부터 “앙드레”라는 이름에 대한 심한 공격을 받았다. 왜냐면 자신들의 우상과 같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하찮은 도둑고양이에게 붙임으로써 유명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더럽히고 먹칠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모님들의 공격과 불평이 얼마나 심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앙드레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자신들의 클럽에서 서 여사를 제명하겠다고까지 했다. 서 여사는 당황했고 고민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 여사는 이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나의 이름을 바꿀까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국어사전을 보게 되었고, 다행히 국어사전에 “드레”라는 단어가 있었고, 말의 뜻이 “사람의 됨됨이로서의 점잖음과 무게”라는 사실을 알고는 서 여사는 환호성을 질렀다. “왜 내가 진작 국어사전을 보지 않고 고양이 겉모습만 보고 이름을 지었을까”하고 후회도 했다. 앙드레라는 이름이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누구”가 아니라 “앙증맞고 됨됨이가 점잖고 무게”가 있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니 자신에게 윽박지르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도 할 수 있고 자신의 유식함과 국어 실력을 뽐낼 수 있으니 환호성이 절로 나오지 않았겠는가? 이 일로 해서 서 여사는 그들의 클럽에 남게 되었고 나의 이름도 그대로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나의 이름이 유명한 디자이너 앙드레 누구에게서 나왔건 국어사전의 멋진 뜻을 따서 나왔건 나에게는 상관이 없다. 다만 사람들처럼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이 좋았다. 그래서 누가 “앙드레”하고 부르면 부를 적마다 나는 대꾸를 했다. 어떤 때는 소리로 “아앙앙”대답을 하기도 하고 꼬리를 흔들거나 귀를 뒤로 젖혀서 대꾸를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엄마로부터 받은 이름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부를 때 뺨에 난 진모(震毛)를 두 번 올렸다 내렸다 했다. 이것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모가 있다. 우리들의 진모는 다른 털과 달리 크고 길며 단단하다. 우리는 이 진모를 통해 의사를 소통하고 주위상황을 판단한다. 우리의 진모는 뺨의 양쪽과 눈의 위, 뺨의 맨 뒷부분에 많고, 턱 끝과 앞발의 뒤꿈치에도 있다. 진모의 뿌리는 피부에 깊게 박혀 있으며 털 주변에는 신경세포와 혈관이 많아서 미세한 공기의 이동을 쉽게 감지할 수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먹이를 쉽게 사냥하고 이동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진모를 앞으로 밀면 반갑고 친밀하다는 뜻이며 뒤로 빼면 공격을 한다든가 방어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뺨에서 제일 긴 진모를 두 번 흔드는 것으로 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가 지어준 이름보다는 서 여사가 지어준 이름이 더 좋았다. 서 여사의 이름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뿐 아니라 나도 사람들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으니 말이다.
 “앙드레”라는 이름을 받는 날 나는 기분이 좋아서 거실 내를 달음질쳤다. 기분이 좋을 때 나는 두 가지 행동을 한다. 하나는 달음박질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떡 밑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바닥이나 비빔 틀이나 집 모서리에 묻히는 일이다. 정열적으로 기쁠 때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나의 이름이 그렇게 좋다는 사실을 안 오늘, 기분이 날아갈 듯해서 거실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쩔 줄 몰랐다. 나의 뛰는 모습은 다른 친구들과 좀 다른 데가 있다. 다른 친구들은 날렵하고 역동적인데 비해 나의 뛰는 자세는 불안정하고 옆으로 삐딱한 모습이다. 더구나 바닥이 해반닥하여 갑자기 멈추기라도 할라치면 더욱 나의 몸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쏠리게 된다.
 나의 이와 같은 모습은 전에 쌀가게 있을 때 옆집가게 아저씨로부터 발길질을 당한 후부터이다. 그 아저씨는 광적으로 나를 미워했다. 나하고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무조건 나를 미워했다. 이는 우리 옆집가게 아저씨와 쌀가게 아주머니가 같이 장사를 하면서 생긴 감정의 골을 나에게 분풀이하는 것이다.
 “고양이 새끼는 요물이야.”
 “저놈의 고양이들은 해고지만 하는 독종이야.”
 “요새는 쥐도 못 잡고 시끄럽게 울기만 해, 에이 빌어먹을 고양이.”
 “남의 집 용마루를 타고 다니며 그 집진을 다 빨아먹는 괴물단지 같으니라고.”
 “에이 재수 없는 것 같으니라고, 똥을 싸려면 똑바로 싸지 남의 집 앞에 싸 놓으면 어떻게 해! 이놈의 요물아!” 하면서 어린 나의 배를 구둣발로 걷어 찼던 것이다. 나는 그때 죽음이 무엇이며 아픔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사람이란 경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 발길질로 인해 나의 배는 탈장이 되고 나의 허리는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이해관계 때문에 장애고양이가 된 셈이다. 장애고양이다 보니 달릴 때 우리가 보아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볼 때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 모습을 서 여사는 좋아했다. 새 이름을 얻은 지금, 기쁘고 즐거우니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보건 장애고양이 병신 육갑한다고 흉을 보건 상관이 없다. 나만 기쁘고 즐거우면 그만이다.
 쌀가게 집의 나일론 줄 굴레에서 벗어나고, 살기 좋은 멋진 현대빌라에서 맛있는 음식과 이름을 가진 나에게 또 다른 기쁜 일이 생겼다. 생겼다기보다는 나의 투쟁에 의해서 기쁨을 쟁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이름에 대한 다른 사모님들의 시비가 어지간히 가라앉은 어느 날, 느닷없이 서 여사가 나의 동료 한 마리를 데려왔다. 앙드레라는 멋진 이름도 짓고 사모님들로부터 칭찬도 받아서 서 여사가 기분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외롭고 쓸쓸해 보여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못생긴 동료 한 마리를 가져왔다. 그 날 서 여사는 “서로 의지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서 여사가 우리들의 사회를 알지 못하고 한 말이다. 우리들의 세계에서 함께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들은 자기 스스로 역경을 이겨 홀로 자신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엄마와 자식 간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새끼를 독립시켜 하나의 독립체가 되는데 자기 형제도 아닌 동료를 친구해서 잘 지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론 우리 동료를 수십 마리 기르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외양에 지나지 않고 그 내막의 삶에는 확실한 질서가 있고 기강이 있어서 서열에 따라 각각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보기에 마치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마 서 여사도 이런 까닭으로 나의 동료를 데려온 모양이다.
 어쨌든 새로 온 나의 동료의 이름은 “깐돌이”이다. 깜찍한 “돌이”란다. 이름이 조금 촌스럽고 천해 보인다. 어찌 되었건 깐돌이가 옴으로 해서 현대빌라 302호의 고양이 세계는 전운이 감돌았다. 우선 서열을 정해야 한다. 내가 현대빌라에 먼저 왔다고 해서 내가 선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세계는 철저한 힘의 우위에 의해서 정해진다. 내가 깐돌이에게 힘으로 지면 나는 깐돌이 꼬봉이 된다. 그의 수하가 되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의 앞에서는 기를 펴지도 못하고, 그의 영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깐돌이를 제압해야 한다.
 나는 먼저 진모로 깐돌이를 제압하려 했다. 깐돌이 역시 녹록한 놈은 아니다. 우선 깐돌이의 진모가 나의 것보다 길고 강했기 때문에 나의 진모 가지고는 필적할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나는 앞발을 가지고 깐돌이의 턱을 차는 앞차기 전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깐돌이는 진짜 도둑고양이여서 거친 밖의 세상에서 굴러먹던 놈이라 태어난 후 줄곧 사람들의 보호 하에 지낸 나의 연약한 발 가지고는 깐돌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깐돌이에게 일격을 당해 나의 턱에서는 피까지 났다. 정말로 이러다간 깐돌을 제압하기는 커녕 수하가 될 판이다.
 고민이었다. 그리고 체면의 문제였고 자존심의 일이었다. 우선 현대빌라에 먼저 왔고 서 여사로부터 예쁜 이름도 받고 사랑도 독차지한 나인데 어디서 떠돌다 왔는지 모르는, 즉 근본을 알 수 없는 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더군다나 힘에 의해 진다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다음으로 목소리로 얼러 보았다. 이것 역시 소용이 없는 일이다. 깐돌이는 대성산과 황금사원인 수국사 등 갈현동 일대를 누비며 뭇 동료들과 겨눈 목소리이기 때문에 나의 목소리는 주눅 든 강아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해도 안 되니 깐돌이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생각했다. 저놈의 깐돌이는 넓은 바닥에서만 살아서 좁은 공간에서의 활동은 나보다 민첩하지 못할 것이며, 이 집의 구조를 나만큼 알지 못할 것이니 집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일격을 가하면 깐돌이를 순간적으로 제압할 수 있으며 그의 수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우리들의 싸움은 상대방의 목덜미를 누가 먼저 물어 항복을 받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다른 동물의 먹이를 잡을 때와 같이 일격에 상대방 동물의 목덜미를 물어 먹이동물이 숨을 못 쉬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깐돌이의 목덜미를 일격에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생각에 미치자 행동으로 옮겼다.
 나는 먼저 거실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극히 제한된 공간이다. 나는 항상 이곳에서 놀았기 때문에 나의 몸을 어떻게 하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어서, 나에게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나서 목소리로 앙!앙앙! 크게 깐돌이를 얼러 댔다. 이는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이며 있을 수 없는 혁명적 반발인 것이다. 깐돌이는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까지 앙드레 저놈의 도전을 모두 물리쳐 이제는 내가 완전히 왕인 줄 알았는데 저놈이 버릇없이 소파 밑에서 쥐 소리 같은 목소리로 도전을 해 와! 어이구, 속 타져! 어줍지 않고 한심하다. 이놈아! 그냥 두었다가는 안 되겠다. 이번에는 정말로 버릇을 단단히 고쳐,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게 혼쭐을 내주어야겠다. 야!! 간다. 최고의 속력으로 소파 밑을 향해 돌진을 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돌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깐돌이의 큰 실수였으며 앙드레가 바라던 바였다. 우선 깐돌이는 소파 밑과 소파 턱의 높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오직 앙드레 놈을 잡아 죽도록 혼내주고만 싶었다. 달려드는 속도와 낮은 소파의 높이를 계산 못 한 깐돌이는 사정없이 소파의 턱에 자신의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하늘이 번쩍하고 정신이 혼미해져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은 앙드레, 나의 몫이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날쌔게 달려들어 깐돌이의 목덜미를 물어 제쳤다. 이쯤 되면 모든 상황은 끝났다. 아무리 항우장사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아무리 거친 들판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깐돌이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아하 이제는 내가 왕초다. 깐돌이는 나의 꼬봉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기쁨을 쟁취했다. 이후 나는 현대빌라 302호에서 기쁨을 만끽하며 호의호식하는 고양이가 됐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기쁨은 기쁨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은 새로운 긴장과 갈등을 초래했다. 내가 깐돌이를 제압하고 그로부터 해방이 되면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막상 깐돌이를 제압하고 나니 깐돌이 존재 자체가 새로운 문제 거리였다. 깐돌이가 있음으로 해서 언젠가는 내가 깐돌이를 제압한 것처럼 나도 그에게 제압당할 것이라는 불안과 언젠가는 그도 이 집의 지형지물을 나보다 더 잘 알아서 더 좋은 방법으로 나를 다시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스트레스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많았다. 깐돌이의 새로운 도전에 대비를 해야 하고, 나보다 나은 방법을 깐돌이가 개발하지 않나 감시도 해야 하고, 편하게 살도록 회유도 해야 하고, 때로는 협박과 공갈도 쳐야 됐다. 이는 행복이 아니라 지겹고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런 상황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결심을 하게 했다. 깐돌이를 제거해야 한다. 깐돌이가 없으면 전과같이 평화롭게 나 홀로 즐거운 생활을 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깐돌이는 나의 적이며 나를 잡아먹는 귀신이다. 죽이던가. 이 집에서 내쫓던가 해야 한다. 그래야 내 속이 편하고 살이 찔 것 같다. 서 여사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지만 그것은 서 여사의 생각이고 나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깐돌이와 같이 살 수가 없다. 깐돌이를 죽이던가. 내쫓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아무리 나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나만의 이익을 갖기 위해 나의 동료를 죽이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도 살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람들은 항용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칠흑 같은 밤에 깐돌이를 불렀다. 그는 마치 조직폭력배의 행동 대원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한껏 위엄을 세워, 내일 서 여사가 골프를 치러 새벽에 나가니 그때 문을 빠져나가 도망을 가거라. 이는 절체절명의 명령이니 행여 이 명령을 한 치라도 어기는 날에는 박살을 낼 테니 알아서 기라는 식으로 공갈을 쳤다. 도망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위협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놈의 성질이 보통이 아닌데 순순히 나의 명령에 따라줄까? 아니면 나의 위치를 위협할 정도로 덤벼들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그런데 깐돌이의 대꾸는 의외였다. 형님 고맙습니다. 사실 저도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형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몰라서 이때까지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런 곳에서는 저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더 넓은 대성산이 좋고 수국사가 좋습니다. 이렇게 갇혀서는 살 수 없는 놈입니다. 형님! 저의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 주시고 도망가라고 허락해 주시니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놈이 미쳤나? 야, 인마! 내가 지금 너를 위해 나가라고 하니? 내가 좋기 위해 나가라고 하는 것이지! 이놈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 하네 하고 생각하는데. 이거, 형님 죄송합니다. 이런 곳에 형님만 남겨두고 혼자 떠나니 마음이 아픕니다. 얼씨구, 이놈이 한술 더 뜨네. 그러나 겉으로는 그래, 그래 좋다. 네가 나를 생각해 주니 고맙다. 하여간에 아침에 나가거라!
 이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나오니 허망하고, 어안이 벙벙하고, 헷갈리었다. 하여간에 깐돌이가 자진해서 나갔는지 아니면 내가 내쫓았는지 모르지만 나의 가슴에 이상한 앙금을 남기고 깐돌이는 이 집에서 나갔다. 한편으로 후회가 됐다.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하고 그 속으로 찬바람이 스산하게 지나가는 듯하다. 차라리 내가 꼬봉이 되고 깐돌이와 같이 있을 걸 그랬나. 아니 내가 나가고 깐돌이를 여기에 있게 할 껄 그랬나. 마음에 종을 잡을 수가 없다. 막상 깐돌이를 내쫓고 보니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고 상쾌하지가 않았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동료의식이고 정이란 말인가?
 동료의식이든 정이든 한번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마음 편하게 먹고 나대로 살아야지. 아이고, 모르겠다. 깐돌이가 나간 것은 나간 것이고 마음이 허전한 것은 허전한 것으로 놔두고 편하게 지내자. 이제는 옛날처럼 부질없이 살지 말고, 대범하게 살자. 나도 부하를 거느려 보았고 세상을 살 만큼 살았으니 어른답게 행동하자. 어쨌거나 깐돌아, 잘 가서 잘 살거라.
  서 여사는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가곤 했다. 골프는 상류사회의 상징적 스포츠인 모양이다. 권력이 있거나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골프를 쳤다. 그 부류의 사람들은 골프를 치지 않으면 왕따를 당한다. 말 상대도 해 주지 않고 이방인 취급을 한다. 서 여사도 사모님들과 모이면 이야기의 절반은 골프 이야기다. 어느 날인가 현대빌라에 잔치가 벌어졌다. 서 여사가 홀인원인가 무언가를 했다는 날이다. 한 번에 공을 작은 구멍에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몇백만 분에 일의 행운이 따라야 한단다. 운동을 하면서 왜 행운을 바라는지 모르겠다. 운동을 할라치면 여러 번 쳐서 몸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운동이지 왜 공을 한 번에 집어넣는 것이 더 좋단 말인가? 운동도 안 되게 한 번에 공을 집어넣고는 좋다고 수백만 원씩 돈을 들여 잔치를 하니 우습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지 작은 구멍에 공 집어넣는데 만 더 신경을 쓰면 되겠는가?
 사람들은 별난 취미를 다 가졌다. 우리는 펄쩍 뛰어오르거나, 먹이를 공깃돌처럼 앞발로 모아 위로 치켜올리거나, 높은 곳에 누가 더 빨리 뛰어 올라가나 하는 등의 운동으로 몸의 근육을 탄력 있고 순발력 있게 만든다. 이런 것이 진정한 운동이지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하면서 구멍에 공 집어넣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무슨 운동이란 말인가?
 내가 사람이 아니니 골프를 무어라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를 예뻐해 주고 귀여워 해 주는 서 여사가 골프를 치니 골프가 좋은 스포츠라고 억지로라도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 여사가 골프를 치러 가면 나는 싫다. 깐돌이가 나간 후 서 여사가 골프를 치러 가면 집에 아무도 없어서 심심하고 무료하다. 서 여사가 자주 골프를 치러 가니 나는 낮잠만 잘 수밖에 없다.
 어느 비 오는 날 서 여사가 골프를 치러 가지 않았다. 나는 좋았다. 그래서 한바탕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의 분비물을 서 여사에게 묻히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런데 서 여사는 나의 호의에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치장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른 점이 많았다. 보통 골프를 안 가면 다른 사모님들이 몰려와 쇼핑을 나간다든가 아니면 수다를 떨기 일쑤인데 나의 애교도 받아주지 않고 사모님들도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내가 생전 보지 못한 건장한 남자가 왔다. 매우 씩씩한 미남이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스스럼없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더니 벽장에서 술까지 따라 마셨다. 그의 익숙한 태도로 보아 현대빌라 302호가 아니더라도 서 여사와 자주 만났고 친밀한 관계인 모양이다. 그런데 서 여사의 태도가 더욱 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다. 지금까지 나는 서 여사가 나만을 예뻐하고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저 남자가 온 오늘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서 여사는 서 여사대로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하는 옷을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는 그 남자에게 애교까지 떨었다. 불쾌했다.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그러나 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들은 마침내 안방으로 들어갔고, 이상한 행위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저런 행위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 맞다. 전에 현대빌라 3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볼 때 어떤 우리 동료 둘이서 저런 행위를 했지. 그때 나는 저런 짓을 왜 하는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어. 나는 그때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가질 필요가 없었지. 서 여사가 나만 사랑해 주고 예뻐해 주니 나의 마음은 항상 뿌듯하고 충만하였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그때와 달랐다. 나에게도 이상한 느낌이 느껴졌다. 가슴이 저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팔다리가 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화득화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모가 나도 모르게 떨렸다. 아마 나에게도 서 여사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들만의 애정이 싹트는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엉아앙! 엉아앙! 하고 그리움에 저려 고운 목소리가 나왔다. 이는 이성(異性)에 대한 그리움의 소리였다. 엉아앙! 엉아앙! 엉아앙! 공명으로 가득 찬 소리는 더욱더 멀리 펴져 나갔다. 나도 이제 이성에 눈을 뜬 모양이다.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그 남자가 짜증 섞긴 목소리로
 “시끄러워 이놈의 고양아!”
 “재수 없게 분위기를 망치고 있어.”
 서 여사도 당황한 목소리로
 “저년이 왜 갑자기 저러지?”
 “혹시 저년이 우리 사이를 눈치챈 게 아닐까?”
 지금까지 서 여사가 나를 보고 “이년” “저년”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항상 “앙드레 어쩌고저쩌고”했다. 그런데 오늘은 의외의 쌍소리를 하는 것이다. 나는 당황했고 듣기에 민망하기까지 했다. 서 여사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사랑하다가도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기분에 맞지 않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가 보다. 서 여사가 나에게 쌍소리를 하는 것으로 봐서 나에게 나쁜 상황이 올 것만 같다. 그래도 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나만의 감정에 취해 또다시 엉아앙! 엉아앙!하고 그리운 이성을 불렀다.
 “권 부장 안 되겠어. 저년을 없애 버리던가. 소리 지르지 못하게 성대를 잘라 버려야겠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나를 없애고 성대를 잘라 버린다고? 지금도 장애고양이인데 소리까지 못나게 만든단 말이잖아. 아이고 안 되겠다. 조심해야지. 그렇게 다짐했지만 나의 목젖에서는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엉아앙! 엉아앙! 소리만 퍼져 나갔다.
 며칠이 안 되어 나는 동물병원이라는 곳으로 끌려가서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밝은 불빛 아래 억지로 입을 벌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두려움은 고통으로 이어졌다. 나의 목젖에서는 찌찌찍 살타는 소리와 노린내가 풍겨났다. 이것이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애완동물 성대수술인 것이다. 레이저인가 무언가 하는 것으로 동물의 아픔이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해서 스스럼없이 동물의 여기저기를 들쑤셔대는 수술방법인 것이다.
 아이고 나 죽는다! 아이고 나 죽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는 것이요? 나는 단지 생리적 현상으로 소리를 질렀을 뿐이요. 서 여사와 권 부장의 일은 나는 모르는 일이요.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요. 아이고, 죽겠네! 아파 죽겠으니 이제 그만 지지세요!
 내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결국 레이저라는 기계는 나의 목소리를 빼앗아 갔다. 이제는 내가 울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목소리 없는 세상은 쓸쓸하고 서글픈 세상이었다. 온 세상이 흥이 없고 맥이 없다. 이제는 사람이 무서웠다. 우리 동료가 그립고 깐돌이가 그립다. 깐돌이의 생각에 미치자 나는 깐돌이를 내쫓은 것이 후회스럽고, 그 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깐돌아 미안하다.
 이제 나는 장애 고양이에다 벙어리 신세가 됐다. 모든 것이 깨어지고 허물어졌다. 이제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간데없고 단지 생명만을 이어가는 우울한 나날이 지속됐다. 그래도 삶은 질긴 것이어서 목숨이 있는 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지금 바랄 것이 있다면 또 다시 이런 고통의 세월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는 어느 날, 반갑지 않은 권 부장이 왔다. 오늘은 전과 달리 권 부장과 서 여사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
 “권 부장! 내가 당신 믿고 돈을 맡겼지 누구보고 그 많은 돈을 맡겼겠어요?
 “사모님! 내가 무얼 잘못했다고 그래요? 한부철강이 부도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한부철강이 얼마나 잘 나가는 회사였어요!
 “거기다 왜 깡통계좌는 집어넣어 빚까지 지게 해요?”
 “다 사모님 좋게 하려고 한껏 아닙니까?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아이고 이젠 망했다. 돈 한 푼 없이 다 날려 버리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으니 어떠하면 좋아!”
 성대수술로 목소리는 낼 수 없었으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 서 여사가 증권회사 권 부장에게 많은 돈을 맡긴 모양인데 그것이 잘못되어 내가 태어났던 미니네 꼴이 된 모양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또 도둑놈이 생겨날 판이다.
 도둑은 또 다른 도둑을 만드는 모양이다. 권 부장과 서 여사의 다툼이 있은 후 사람들은 IMF가 어떻고, 경제 식민지가 어떻고, 실업자가 어떻고, 파산이 어떻고, 빅딜이 어떻고, 환율이 어떻고―하며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쏟아냈다. 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또 밑두리콧두리 알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소리들은 나로 하여금 현대빌라 302호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들은 검정 옷에 빨간 모자를 쓰고, 까만 안경을 끼고, 신발도 벗지를 않은 채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위압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탁자 밑으로 숨어 버렸다. 그들은 여기저기 빨간 딱지를 붙였다. 그들은 악당이었고 깡패였다. 험상궂기가 혁명군이나 폭도와 같았다. 내가 쥐를 잡을 때 쥐가 나를 보고 느끼는 공포 같은 것이다.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이 병신 고양이는 밖에 던져 버리지”하고는 나를 3층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전에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을 때 저놈들을 잡아야지 하면서 한번 뛰어내려 보려고 시도했었지만 너무 높아서 포기했던 높이인데 오늘 무서운 사람에 의해 밖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균형을 잡아 땅에 무사히 떨어졌다. 공중에서 여러 바퀴를 돌면서 세상을 보니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나는 현대빌라 마당에 나와 주목나무 밑에 숨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왜 내가 현대빌라 302호에서 쫓겨났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실히 서 여사에게 봉사를 했고, 서 여사에게 기쁨과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다만 서 여사와 권 부장 일은 내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내쫓김은 모두 나의 뜻과는 무관한 것이다.
 현대빌라 302호는 망했다. 서 여사는 서 여사대로 무절제하게 살면서 한때 좋았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고, 깡통계좌로 집은 경매처분 됐고, 성형외과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리스로 외국에서 빌린 비싼 의료장비는 환율이 3배 이상 오르는 바람에 본전은 고사하고 이자도 못 물게 된 데다 환자는 줄어 수입이 반도 안 되니 망할 수밖에―. 빨간딱지. 파산이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나와 상관없는 일들로 왜 내가 비참해져야 하나? 이 모든 것이 남의 돈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왜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만큼만 쓰고 벌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남의 돈을 빌려 무리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남 원망할 때인가? 나는 어떤가? 몸은 장애에다 벙어리 신세고, 집도 없고 주인도 없는 떠돌이 신세 아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것이 사람이라는 인간 때문이다. 인간의 도구인 굴착기는 엄마를 빼앗아갔고, 인간의 이기(利器)인 레이저는 나의 목소리를 앗아갔고, 인간을 윤택하게 만드는 돈은 나에게서 집마저 빼앗아 갔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엄마!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지요?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다. 그래,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지.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 그러나 지금까지 사람들 손에서 살아온 나에게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라든가, 잠자리를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생소하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결책을 알아볼 힘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서 여사 때문에 쫓겨난 몸이 되었으나 나에게도 문제는 있다. 서 여사의 사랑만 믿고, 고양이를 망각하고 마치 사람인 양 생각했고 행동하지 않았는가? 그러다 보니 나는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것이 됐다.
 주목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언 땅에서 냉기가 올라왔다. 나는 지금까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몰랐다. 현대빌라 302호는 겨울에도 항상 따듯했고 여름에는 에어컨 때문에 시원했다. 나는 계절의 변화에 대해 둔하게 돼서 계절에 따라 털을 갈아입는 습관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나는 겨울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처지다. 겨울에 모시 적삼을 입은 꼴이다. 사방에서 추위가 엄습해 왔고 굶주린 배는 나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수국사가 생각났다. 그곳은 자비가 있는 곳이란다. 또 절 전체를 황금으로 칠한 황금사원이라 한다. 자비와 황금이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지금의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자! 황금사원으로―.
 아니, 저놈이 누구야! 저놈은 깐돌이가 아닌가? 그는 수국사의 왕초가 되어있었다. 지금 나는 어떤가? 왜 나는 사람도 아니면서 사람처럼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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