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0:17 (수)
“젊은 의사에 귀 기울여 떳떳한 의사 되도록…”
“젊은 의사에 귀 기울여 떳떳한 의사 되도록…”
  • 김윤아 기자
  • 승인 2020.08.08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공의·의대생 1만2,000명 ‘의대 정원 확대 반대’ 가두 시위
7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한시 파업… 진료 차질은 없어

젊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의대 정원 확대 정책 등에 반대하며 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대로에서 개최한 전국 전공의 집단행동에 전공의 5,000명, 의대생 3,000여 명이 동참하는 등 전국 시위에 1만2,000명이 참여했다<사진>.

전공의들은 이와 함께 7일 오전 7시부터 24시간 동안 한시적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병원 측이 교수 등 대체 인력을 투입해 진료에 큰 차질은 없었으며, 의대생들도 의협이 총파업을 결의한 14일까지 수업 거부를 결의하기도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박지현)가 주도한 이번 집회는 △서울·경기·인천(여의대로) △제주(제주도의사회관) △강원(강원도청 앞) △대전·충청(대전역 서광장) △대구·경북(엑스코) △부산·울산·경남(벡스코) △광주·전남(김대중컨벤션센터) △전북(그랜드힐스턴) 등지에서 진행됐다.

전공의들은 단체행동 결의문 및 대정부 요구안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촉구했다.

젋은의사 단체행동-대구경북
젋은의사 단체행동-대구경북

대정부 요구안은 △의대 정원 확충과 공공 의대 등 전면 재검토 가능성을 포함한 소통 △전공의가 포함된 의료정책 수립·시행 관련 전공의-정부 상설소통기구 설립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지도전문의 내실화, 기피과에 대한 국가 지원 등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요청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전공의 관련 법령 개정 등 4가지다.

특히 전공의들은 '환자분들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집단행동에 대한 양해를 구하면서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서연주 대전협 부회장이 ‘편지’를 낭독하는 동안 집회 현장에는 숙연한 기운이 흘렀으며, 눈물을 훔치는 전공의도 눈에 띄었다.

젋은의사 단체행동-부산울산경남
젋은의사 단체행동-부산울산경남

다음은 서 부회장이 낭독한 편지 전문.

어제도 여느 때처럼 힘든 하루였습니다.
당직서며 날밤을 꼬박 새웠고, 새벽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콜을 받았습니다.
제때 끼니를 챙겨 먹은 게 언젠지 모르겠습니다. 가족들 얼굴을 본 것도요.

힘듭니다. 지칩니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일매일이 숨이 가쁘고 치열합니다. 병원에서 일하지만 아파도 병원 갈 엄두를 못 냅니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었고, 쉴 생각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의지해 힘겹게 숨을 이어가는 환자 곁을 차마 떠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젊은의사단체행동- 의협 최대집 회장과 방상혁 상근부회장이 보인다.
젊은의사단체행동- 의협 최대집 회장과 방상혁 상근부회장이 보인다.

의사국가고시를 합격하고, 인턴부터 시작해 내과 레지던트가 되었습니다.
매 순간 다짐했습니다. 진정으로 환자를 위하고 살리는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요
Do no harm, 환자에게 해를 가하지 말라, 학생 시절부터 못이 박히게 들었습니다.

그런 젊은 의사들이, 제 목숨처럼 돌보던 환자들을 떠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부도, 병원도, 젊은 의사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워야 할지 관심이 없습니다.
지방의 병원에는 왜 의사들이 부족한지
내외산소라 부르는 생명을 다루는 과들이 왜 기피대상이 됐는지
소명과 사명이라는 의사의 덕목이, 왜 이젠 바보같은 헛된 꿈이 됐는지.

엉망인 의료체계를 만들어 놓고도, 정부는 아직도 쉬운 길만 찾으려 합니다.
제대로 배우고 수련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은 대한민국엔 없었습니다.

숫자만 늘리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무턱대고 급여화 해주는 것이 미덕은 아닙니다.

국민을 위한다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다면,
눈가리고 아웅식의 해법이 아닌, 진짜 해답을 찾아 주십시오.

우리 전공의들에겐 병원이 일터이자 쉼터이고, 환자들이 가족이자 스승입니다.
거리로 나가느라 내일은 못 올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말하던 제게 웃어주던 환자분이 생각납니다.
지독한 병마로 뼈만 남은 몸을 일으켜 잘 다녀오라는 인사에, 죄송함이 앞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약속 드립니다.
오늘이 지나면, 저희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아픈 환자 곁을 밤새 지킬겁니다.
불꺼진 병원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외로운 환자들과 기꺼이 함께 할겁니다.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떳떳하겠습니다.
그 힘들고 따뜻한 모습이 헛되지 않게, 진실되고 올바른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을 한켠에 둔 채, 이 자리에선 크게 목소리 내겠습니다.

여기 있기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젊은 의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환자 곁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떳떳한 의사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이것이 전국의 1만 6천여명 전공의들이 병원 대신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8월 7일
내과 레지던트 서연주 올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