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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신작소설5] 택시 나라
[신덕재 신작소설5] 택시 나라
  • 신덕재 중앙치과원장
  • 승인 2018.10.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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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중앙치과 원장
신덕재 중앙치과 원장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국회의사당이요.”
“국회의원이신가 보지요?”
“아뇨. 국회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뭐하시는 분인데 국회의사당을 가세요?”
“명상가(瞑想家) 입니다.”
“명상가라니요? 건강에 좋다는 명상 말입니까?”
“예, 몸에도 좋고 정신도 맑아지는 거 말입니다.”
“명상이 좋기는 좋은가 보지요?
“암요, 좋고말고요. 우선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좋게 보여요.”
“명상을 하려면 인도에 가야 한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명상이 인도에서 발달하기는 했지만 꼭 인도에 갈 필요는 없어요. 명상은 안방에서도 할 수 있고, 사무실 의자에서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서 할 수 있어요.”
“테레비를 보면 한쪽 다리를 어깨 위로 꼬아 머리 위에 올려놓고 한 발로 서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뱃가죽이 등에 붙도록 자유자재로 출렁출렁 배를 흔들며 춤추듯 하기도 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수염이나 머리털을 평생 깎지 않고 사는가 하면, 사시사철 알몸으로 지내는 등 희한하고 신기한 게 많더라고요.”
“그것도 일종의 명상이기는 하나 대개 요가라고 봐야지요.”
“그러면 명상과 요가가 다른가요?”
“명상은 호흡을 중심으로 내면의 세계를 고요하게 하고 정신을 깨끗하게 하는 자기수양인 반면 요가는 신체변이나 행동의 특활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의 한 도(道)지요.”
“아∼! 그래요, 난 명상과 요가가 같은 줄 알았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택시를 타다 보니 운동할 겨를이 없어요. 혹시 운전하면서 한 가지 명상 할 방법 없을까요? 좋은 방법 있으면 한 수 배웠으면 하는데….”
“명상은 한 수로 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공부를 할 필요도 없어요. 명상은 간단해요. 초월명상에서 ‘만 트라’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계속 외우면 돼요. 거창한 게 아니지요.”
“그런데 선생님! 명상을 하시는 분이 왜 국회의사당은 갑니까?”
“아∼, 예, 요새 국회가 웃겨서요. 국회라면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좋은 법을 만드는 덴데, 무슨 조폭 아지트처럼 맨날 싸우면서 국회 문 때려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공중부양 하고, 멱살 잡고, 대두리 싸움을 하니, 이게 무슨 국횝니까?
 내 국회에 가서, 강주갑인가 술갑인가 하는 국회의원이 공중부양을 해 세상을 웃겼다고 해서, 공중부양이 뭔지 알려 주러 갑니다.
 공중부양이라는 게 명상의 일종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새롭게 하고, 자기 수양을 충실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공중에 붕 떠는 걸 말하는데 술갑이처럼 국회 문짝 때려 부수면서 날뛰는 게 공중부양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갑이한테 공중부양이라는 게 나라 살리고 백성 잘살게 하는 묘약이라는 것을 알려주러 국회에 갑니다.”
“예, 맞아요. 주갑이가 테레비와 신문에 빡시게 나왔죠. 공중부양 했다고….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 내 참, 그 친구 웃기는 친구네요. 명상도 모르는 놈이 마치 명상가처럼 공중부양을 하면서 몸 개그를 했네요. 나라 망신시킨 몸 개그네요.
 요새,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 똥오줌 못 가려요. 뭐가 뭔지 도통 모른다니까요. 해괴한 유언비어로 국민들을 속이지를 않나, 국회의원 한번 되면, 자기가 국민의 대표라고 어깨에 힘주고, 쥐뿔도 모르면서 최고인 줄 알고, 국회 문 때려 부수고, 공중부양하고, 사람 면상 깨고, 두발차기 하면서 돈 되는 데는 정신 못 차리고 쫓아다니니, 내 참, 더럽고 씹 같아서!
 나, 제대하자마자 핸들 잡았으니 벌써 20년이 됐네요. 내 배운 것 없고 가방끈 짧아도, 20년 동안 택시 운전하면서 손님들로부터 들은풍월 중 열에 하나만 늘어놓아도 씹 같은 국회의원 열 부럽지 않아요!
 그러나저러나 조카튼 국회의원은 부럽지 않은데, 요새 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요? 하루 입금 채우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다 공무원이다 경찰이다 시민단체다 하는 친구들, 택시 서비스가 어떠네, 차내 청결이 어떠네, 합승이 어떠네, 부당 요금이 어떠네 하면서 택시기사들만 조져요. 그러니 힘없는 우리가 살맛이 나겠어요?
 저기 보세요. 허구한 날 저렇게 데모를 하니 택신들 다닐 수 있겠어요? 요새는요, 광우병이다 뭐다 해서 밤새도록 촛불 데모를 해 더 난리예요. 그래서 더 죽을 맛이죠.
 그런데요, 요새 손님들이요∼, 광우병 때문에 둘로 갈라져서 싸우는 거 보면 얼마나 잼 있는지 몰라요.”
“광우병도 강주갑의 공중부양만큼 터무니없고, 나라 망치는 거예요.”
“아닙니다. 주갑이의 공중부양은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혼자 날뛴 지랄병이지만, 광우병은 엠비지 오디수첩에 나왔잖아요.
 미국 소를 먹으면 골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무슨 병이라던데, 하여간에 다리에 힘이 빠져 비실비실 자빠지고, 머릿속에 물이 가득 차는 병에 걸려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공중부양과 광우병은 완전히 다르죠.”
“그걸 믿어요?”
“아니, 테레비에 나왔는데 안 믿는단 말입니까? 테레비에 나온 걸 믿지 못하면 무엇을 믿는단 말입니까? 테레비는 거짓말을 안 해요.”
“테레비라고 다 믿을 수는 없지요.”
“아! 손님, 답답하시네!, 그러면 뭘 믿습니까? 정말 테레비를 안 믿어 미국 소를 먹었어요?”
“그건 테레비를 믿고 안 믿고, 미국 소고기를 먹고 안 먹고가 문제가 아니지요. 단지, 쇠고기가 어느 나라 고기건, 호주산이건, 뉴질랜드 산이건, 미국 산이건, 국산 한우건 맛있고 질이 좋으면 먹는 거지요.”
“손님, 큰일 나겠습니다. 미국산은 당대에만 광우병이 걸리는 게 아니라 손자 대까지 내려 간대요. 지금은 몰라도 아들 손자 대에 나타날 수도 있답니다. 손님, 한번 확인해 보시고 빨리 조처를 취하세요.”
“아니 그러면 기사 양반은 지금까지 미국산 소고기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는 겁니까?”
“전 테레비를 보고 난 후 절대로 미국산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건 맹세 할 수 있어요. 미국산 소고기를 먹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먹어요? 사람 죽이는 거지요.”
“그럼, 테레비에 나오기 전에도 미국산 소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그때야 모르죠, 그때는 소고기하면 그냥 소고기지, 미국산 소고기가 따로 있고, 호주산, 뉴질랜드산, 캐나다산, 덴마크 산이 따로 있는 줄 알았나요. 그러니 소고기 하면 다 같은 소고기인 줄 알고 국산 한우처럼 먹었지요.”
“혹시 그때 먹은 소고기 중에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 있었다면 어떻게 하지요?”
“들어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아무 이상이 없으니 미국산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봐야지요.”
“미국산 소고기 한 점만 먹어도, 심지어 미국산 소 재료로 만든 생리대를 사용만 해도 광우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미국산 소고기 한 점도 안 먹고, 미국산 소 재료로 만든 생리대를 아내나 딸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내가 미국산 소고기를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고, 아내나 딸이 미국산 소고기 생리대를 사용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지금까지 아무 일이 없으니 광우병과는 별개라고 봐야지요.”
“그건 기사님이나 광우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다 같아요. 광우병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 유학 가서 미국 쇠고기를 먹으면서 공부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 다 멀쩡해요.
 또 이상한 것은 기사님이나 광우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다면 평생 미국산 소고기를 먹은 미국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 광우병에 걸려 죽었겠네요?”
“그건 아니래요.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산은 출산 30개월이 지난 광우병에 잘 걸리는 소이고 미국 사람이 먹는 쇠고기는 출산 20개월 미만의 소고기여서 광우병에 안 걸린답니다.
그러니까 미국 놈들이 죽일 놈들이지요. 자기들은 살고 한국 사람들은 죽으라는 거지요. 맹박이가 병신이예요. 자기 국민 죽을까 봐 안 먹는 2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겠다고 아양을 떨었으니 세상에서 제일 큰 병신이지요. 그래서 저렇게 데모를 하고 난리법석 아닙니까? 나도 맹박이가 한 짓을 보면 열따구가 나더라고요.”
“데모하는 사람들이 옳은지 맹박이가 그른지 모르겠으나 광우병만 가지고 데모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어요. 그런데 100만 가까운 사람들이 데모를 하니 그게 옳은지 그른지 분간하기가 어렵네요. 좌우지간 그건 그렇다 치고 하시던 말씀을 계속하시죠.”
“요새 데모는 요상해요. 데모가 무슨 촛불문화마당이래요. 무슨 문화마당에 맹박산성이다, 화염병이다, 죽창이다, 물대포다 하면서 난리인지 모르겠어요.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요. 좌빨과 북한 추종자들이 지난 선거에서 져서 이번 촛불데모로 맹박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햇빛을 비추자고 해요.
그렇지 않아도 금융위기다 뭐다 해서 시중에 돈이 말랐는데 저렇게 데모를 하니 우린 어떻게 살지요?
에이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 이게 다 맹박이 때문이에요. 맹박이가 미국에 가서 뭐 살판났다고, 무슨 에푸티에인가 뭔가 하는 거 체결 안 하고, 미국 소고기를 수입하겠다고 아양만 안 떨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떤 손님이 말하는데, 지금의 불경기는 저 데모질에다 세계금융위기인지 뭔지 하는 게 겹쳐서 그렇게 됐데요. 그런데 사실은 맹박이 때문만은 아니고 원래는 놈현이가 망쳐 놔서 그랬데요. 놈현이가 땅값을 얼마나 올려놨습니까? 무슨 복합도시다, 행복도시다, 행정도시다, 뉴타운이다 하면서 거품을 왕창 불어놓고, 너도 좋고 나도 좋다며 보상금을 올려 줘 땅값을 하늘 끝까지 올리고, 강남 아파트는 보상받은 돈이 몰려와 얼씨구 좋다 하고 아파트값이 천정부지 모르게 올랐다고 하지 않아요?
무슨 놈의 아파트값이 한 평에 오천만 원이 넘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을 모아도 오천만 원 벌기 힘든데…. 강남에 재건축 아파트 15평형이 12억이 넘는다니 열따구 안 나겠어요?
 그래놓고선 왜 놈현이는 바위에서 떨어져 뒤집니까? 뭐, 서거네 자살이네 떠들어 대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네는 놈현이 죽든 말든 아무 상관 없어요, 오직, 방 따습고 배부르면 장땡이거든요.
에이! 시팔! 선생님, 차도 막히고 지겨운데 재미없는 데모 얘기보다 택시에서 일어난 얘기나 한번 해 볼까요?”
“그거 좋지요! 20년 택시 경험이니 이야기가 아니라 재미있는 소설이나 멋진 철학이 되겠어요.”
“아! 아녀요. 어디 소설이 되고 철학이 되겠어요, 그냥 넋두리나 푸념에 지나지 않지요.”
“하여간에 소설이건 철학이건 넋두리이건 푸념이건 멋진 얘기겠네요.”
“아까 내가 못 살겠다고 한 것은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택시기사들 살기 힘들어서 한 말입니다.
우리가 이래요. 아침 5시부터 저녁 5시까지 12시간 2교대 합니다. 그리고 하루 사납금이 12만 원예요. 그러니까 모든 경비를 제하고 시간당 1만 원을 벌어야 해요. 이 1만 원을 벌기 위해 기본요금 2400원에 메타 당 100원이면 8킬로를 달려야 해요.
그런데 저것처럼 데모다 뭐다 해서 차가 막히면 우리는 죽는 거예요.
사납금만 벌면 다 되는 게 아녀요. 차에 깨스도 넣고, 세차도 하고, 물도 사 먹고, 식사도 해야, 기사도 살 것 아닙니까!
이 모든 것을 계산하면, 식사비 하루 두 끼 만원, 깨스비 삼만 원, 세차비 삼천 원, 음료수 천원 합이 사만사천 원이 돼요.
그러니까 사납금 포함 하루 기본으로 벌어야 하는 돈이 16~17만 원이 됩니다. 그러면 17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손님을 태우고 150킬로를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손님 한번 태우고 10킬로도 못 가요. 차 막힌다, 데모다, 도로공사다. 등등 손님이 기본요금 거리만 가도 감지덕지예요. 그러니 빈 차로 다니기 일쑤지요.
빈 차로 다니다 보니 차는 차대로 망가지고, 깨스는 깨스대로 나가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욕은 욕대로 다 먹고, 이러니 하루 16~17만 원 벌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요.
이렇게 어렵고 힘든 판에 차 감가상각 같은 건 생각지도 안 해요. 그런 거 다 생각했다가는 머리 터져 죽어요. 모든 걸 다 잊고 삽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피 같은 차도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없어지고 몸은 성한 곳 한군데 없이 만신창이가 다 되어 있어요. 이게 택시기사들의 하루이고 한평생이랍니다.
이거 뭐 내 얘기만 하니 재미가 없지요?”
“아! 아닙니다.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이니 얼마나 흥미진진합니까?”
“택시기사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봐요. 특히 택시 내부가 좁다 보니 아늑한 분위기에 손님들이 자기 생각이나 사연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놔요. 그래서 돈 안 들이고 인생 공부도 하지만 가끔은 손해도 봅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요. 인생살이이니 재미있는 일도 있고 손해 보는 일도 있겠죠, 뭐.”
“재미도 있고 손해도 보긴 하지만 슬픈 일도 있지요. 한번은 이런 일 있었어요.
아마 아멤에프 때가 좀 지났을 때인 것 같은데, 하루는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개시를 하려는데 어떤 허름한 사람이 타더니 대전을 가자는 거예요.
우와! 장거리 손님이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사납금을 못 채울 것 같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웬 횡재인가 생각이 들었죠.”

‘손님! 대전까지는 메타로 못가고 시외요금을 받습니다.’
‘아! 예∼, 알아요. 도착해서 드릴게요.’
‘대전까지 13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
‘아 알았다니까요. 걱정 말아요!’
‘요새 장거리 손님들 중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돈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손님이 많아서요.’
‘아, 세상 속고만 살았어요?’
‘하여간에, 손님, 도착하는 대전집의 전화번호 좀 알려 주시겠어요?’
‘아따! 기사 양반 의심도 되게 많네. 042 570 XXXX요.’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요새 세상이 그래요. 자 떠납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살려면 독하게 할 수밖에….」
‘손님! 주무세요? 아니 만남의 광장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곯아떨어졌네.’
‘대전 570에 XXXX라 했지!’
‘어디, 확인을 해 봐야지’
‘아, 여보세요! 거기가 570에 XXXX지요?’
‘네, 그런디유?’
‘아 다름이 아니라, 저는 택시기산데요, 당신 아드님이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댁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댁의 아드님이 택시 요금을 집에 도착해서 준다고 해서 확인 전화 드립니다.’
‘아! 그놈이라면 오지도 말라고 해유!’
‘왜요? 지금 오산지나 조금만 가면 천안인데요?’
‘오산인지 천안인지 난 모르겠고유. 기사 양반은 택시 요금 못 받을 줄 아시유!’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무슨 소리건 간에 그놈은 내 논 놈이니 껴, 택시 요금은 없는 줄 아슈!’
「이게 뭔 소리야! 오늘 장거리 한번 걸렸다했는데, 재수 옴 붙은 거 아냐? 에이 시팔」
‘아저씨! 그만 자고, 내 얘기 좀 들어 봐요!’
‘대전 집 당신 아버님이 당신 오지 말래요. 내 논 놈이라고 하면서….’
‘에이, 시팔! 얼레! 머라고 전화질은 전화질이래!’
‘도착하면 돈을 준다고 하니 돈 줄 사람에게 전화를 당연히 해야죠.’
‘사람을 그렇게 못 믿으면 돼요?’
‘돈 줄 사람이 최고지 누가 최고예요? 그러니까 돈 줄 사람한테 물어볼 수밖에…. 당신이 돈을 먼저 줬으면 전화를 뭐하러 했겠어요? 요새는 돈이 최고예요! 돈!’
「너무 심하게 돈 얘기를 했나? 하여간에 택시비를 받아야 하니 돈이 최고지」
‘우라질! 돈이 최고래, 난 돈 없소! 돈 없어 마누라도 도망가고, 새끼들도 없어지고, 부모도 날 버렸소!’
‘나, 지금 노숙자요!,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노숙자란 말이야!’
「어멈, 오늘 조졌네. 왜 지랄이야! 노숙자면 노숙자지! 노숙자와 택시비와 무슨 관계가 있어? 노숙자가 무슨 벼슬자리인가? 완전히 배 째라네.」
‘그래도 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장 놈한테 사기당하고 집 날리고, 거들나 이 신세가 됐는데, 뭐, 나보고 노숙자래, 기사 양반! 어디 한번 대답 좀 해 보슈! 지금 내가 나쁜 죄 지은 것 있소? 단지 돈이 없을 뿐이요! 남을 해치지도 않았고 강도질도 안 했단 말이요, 그런데 왜 날 도둑놈 취급하고, 거지 취급하고, 병신 취급하냔 말이요?’
‘그런 얘기를 왜 나한데 해요? 나야, 택시 요금만 받으면 돼요!’
‘뭐! 택시 요금∼, 그래서 내 얘기를 못 들어 주겠단 말이요?’
‘지금 내가 당신 말 들어 줄 필요가 어디 있소? 댁에 가서 택시 요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문제지!’
‘나 미치겠네! 모든 게 돈이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돈 없으면 죄를 안 지어도 죄인 취급하니 무슨 놈의 세상이 이래! 난 지금 죄인 취급당하는 것이 억울해! 난 죄지은 적 없어! 기사 양반! 죄짓지 않고 죄인 취급당하면 억울하지 않소?’
「이제는 발광이네. 에이, 모르겠다. 할 말은 해야지!」
‘지금 돈 안 내고 무임승차 한 게 죄짓는 거지 뭐예요?’
‘무임승차? 대전에 도착해서 차비를 준다니까!’
‘그런데 손님 아버지가 내 논 놈이라고 오지 말라고 하잖아요.’
「좀 지나쳤나? 아니, 자기 아버지가 내 논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 논 놈이라고? 정말 미치겠네! 아버지마저도 저러니…. 눈물이 나요! 모두 날 버리니 눈물이 난단 말 이예요! 엉! 엉! 엉! 아버지! 나 지금 힘들어요! 힘들어 죽겠어요. 지금 아버지한테 찾아가도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아요, 아버지도 나처럼 노숙자가 다 되었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래도 아버지가 그리워 요, 아버지,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요?’
「왜 남의 택시에서 울고 지랄이람. 안 되겠다. 무슨 수를 써야겠다.」
‘손님! 천안 휴게소 다 왔는데 휴게소에 잠깐 들러 화장실도 가고 다리도 풀고 가시죠?’
‘그러죠, 시간 정해 놓고 가는 거 아니니까.’
「선뜻 대답하는 것을 보니 풀이 좀 죽은 모양이네.」
‘손님 먼저 화장실에 갔다 오슈.’
‘네, 그럼 내가 먼저 화장실이 갔다 오지요.’
「그냥 이대로 대전에 갈 수는 없지. 뭔가를 결정해야지.」
‘여보세요! 570에 XXXX지요?’
‘아니 왜 또 전화를 해유?’
‘여기가 천안 휴게손데, 아드님이 자꾸 대전 집에 가자고 야단이네요’
‘아, 글씨, 아까두 말했지만 유, 택시비를 줄 수가 없시유, 돈이 없는디 어떻게 준단 말이유?’
‘아, 예, 잘 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뭐 하러 대전까지 가지? 돈도 못 받을 거면서….
그냥 서울로 올라가자, 에라 모르겠다, 노숙자가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에 줄행랑치자! 허 참, 내가 뭐 하는 짓이야! 택시비도 못 받고 마치 죄진 놈처럼 뺑소니를 치니 말이야, 내 참 더러워서.」

“사납금도 못 채우고 빈털터리로 오니 그 날은 완전히 조진 날이지요.”
“그래, 그 노숙자는 천안에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요? 알 수 없죠. 화장실에서 나와 고래고래 욕을 하면서 지랄을 했겠죠. 난 몰라요. 그 노숙자보다 내가 더 열따구 나 죽겠는데….”
“두 분 한데는 안 된 얘기지만 재미는 있네요.”
“이게 재미라 할 수 있어요? 못사는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얘기지요. 피눈물 나는 얘기를 손님은 아세요?”
“저도 어릴 적 못 살 때 피눈물 난 일이 있었지요.”
“선생님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 그럼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월사금을 못 내 집으로 쫓겨 가, 돈이 없어 한동안 학교를 못 갔지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런 건 그 당시에 흔한 얘기잖아요. 지금은 그런 얘긴 얘기 축에도 못 껴요. 그
밖에도 얼마나 돈 때문에 피눈물 나는 일이 많은데요.”
“내 얘기보다 더 심한 얘기가 있다고요?”
“그럼요, 있다마다요. 그러니까 얼마 안 됐어요. 한 애띤 아가씨가 급히 차를 타면서….”

‘아저씨! 전라도 광주까지 대절 할 수 있지요?’
‘물론, 있지요. 그런데 아가씨는 왜 광주를 가요?’
‘그런 건 알 필요 없고요. 광주까지 얼마예요?’
‘메다 요금은 안 되고 30만 원만 줘요.’
‘좀 비싸네요! 25만 원에 가요.’
‘선불 주시겠어요?’
‘아니요, 택시 요금 선불 주는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러면 30만 원 아니면 못 갑니다.’
‘할 수 없네요. 좋아요! 30만 원에 가요.’
‘30만 원도 아가씨니까 가는 거예요.’
‘나 아가씨 아니에요.’
‘아가씨가 아니면 아줌마요?’
‘아이! 짜증! 아저씨 왜 그래요? 짜증 나 죽겠네!’
‘짜증이 왜 나? 아가씨처럼 보이니까 아가씨라고 하는데’
‘아저씨! 정말 짜증 나네! 저 아가씨 아니고 학생이거든요’
‘뭐라고? 학생이라고? 학생이 왜 아가씨처럼 하고 다녀? 화장이 왜 그렇게 찐해?’
‘왜 학생은 화장 못 해요? 요새 화장 안 한 여학생 거의 없어요. 아저씨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정말로 사차원이네’
‘아가씨가 아니고 학생이라면 대체 몇 살인데?’
‘그건 알 필요 없고요. 빨리 광주나 가요’
‘응, 그래, 광주 가자고 했지? 내 정신 좀 봐. 자, 출발이요.’
‘아저씨, 광주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요?’
‘글쎄∼, 안 막히면 서너 시간 걸리겠지.’
‘좀 빨리 갈 수 없어요?’
‘왜? 빨리 가야 할 일이라도 있어?’
‘지금 취직하러 가거든요.’
‘취직? 웬 취직? 학생이 무슨 취직을 해? 요새 같은 불경기에 취직이 돼?’
‘학생이라고 취직 못 하고 불경기라고 취직 못 하나요!’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취직하는 거 아냐?’
‘자꾸, 어린애, 어린애 하지 말아요! 저도, 알건 다 알아요.’
‘그래, 뭘 그리 많이 알아서 광주로 취직을 하러 가나? 너희 부모가 허락을 해?’
‘부모가 왜 허락을 해요? 내가 취직을 안 하면 살 수가 없는데…. 내가 취직을 안 하면 우리 집 거덜 나요. 아저씬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너 집 사정을 어떻게 알며, 또 알아서 뭐 하니?’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공연히 짜증 나게 묻지 마시구요!’
‘학생! 그렇다고 세네 시간을 말 한마디 안 하고 싸운 사람처럼 가나? 너무 조용히 가면 졸리고 위험해요. 그러니 네가 광주로 취직하러 가는 얘기나 들어보지.’
‘필요 없어요. 좋은데도 아닌데요, 뭐.’
‘취직자리가 좋고 나쁜 데가 어디 있어? 요새 같은 불경기에 취직됐다는 것만 해도 어딘데!’
‘아저씨! 열나게 하지 말아요! 지금 나 술집에 일하러 가니까 자꾸 취직, 취직하지 말아요!’
‘뭐라고! 술집에 일하러 간다고? 야! 그러면 여기서 내려!’
‘아저씨! 왜 그래요? 내가 술집에 가든, 몸 팔러 가든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여기 고속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면 돼요? 무식하게 매너도 없이…. 전, 내릴 수 없어요! 난 가야 돼요! 집에는 나만 쳐다보는 사람들뿐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나를 여기서 내리라고요! 어림도 없는 소리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술집으로 일하러 간단 말이냐?’
‘아저씨는 신경 끊어요. 아저씨가 내 아버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신경을 써요? 씰데 없는 데 힘 빼지 마세요.’
「하긴 그렇지. 내가 왜 콩이네 팥이네 참견이야.」
‘아저씨, 오줌 마려운데 가까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요.’
‘그러지, 망향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지.’
‘아저씨, 망향 휴게소에서 소주 한잔 사주 세요.’
‘아니, 너, 술도 마셔?’
‘아저씨는 술집에 가는 여자가 술을 못 마시면 말이 돼요? 술은 기본이고 노래도 해야 하고 춤도 춰야 되고 2차도 가야 돼요.’
‘뭐?, 섹스도 한단 말이야?’
‘돈을 벌어야지요. 돈 벌러 나왔는데 2차면 어떻고 3차면 어때요?’
‘야! 그래도 그렇지 어린 나이에 넘 심한 거 아니니?’
‘참! 아저씬 순진도 하시네. 요샌요. 중딩 3학년만 되도 화장 다 하고 할 거 다해요. 여름방학 지나면 끝내줘요. 천연기념물 찾기 힘들어요. 나처럼 찌질이어서 왕따 당하는 애들은 더 심해요. 왕따 당하느니 먼저 설치는 거예요. 먼저 설레발이 까야 건들지도 않고 짱으로 봐 주거든요. 저도 고 1때 할 거 다하고 맛볼 거 다 맛 봤어요.’
‘그래, 너 임신도 해 봤어?’
‘아저씬, 임신이 그렇게 중요해요? 임신하려고 섹스해요? 즐기고 돈 벌려고 섹스하지. 그냥 섹스를 하는 거예요.’
‘그러다 실수해 임신 하면 어떻게 하니?’
‘그런 실수는 하지도 않지만 설사 임신이 돼도 걱정 안 해요. 상대방이 다 알아서 해결해주니까요. 아저씨! 자꾸 씰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망향휴게소 다 왔으니 내려요.’
‘응, 그래, 다 왔구나. 내가 정신이 없다 없어.’
「정말로 지금 이 아이를 광주까지 데리고 가야 하나?」
「광주에 가면 이 아이는 망가지는데.⌟
「이 아이가 없으면 걔네 집이 엉망이 된다는데…….」
‘아저씨 뭐해요? 빨리 소주 사 오지 않고요?’
‘아, 그래, 이슬로를 살까? 아까처럼을 살까?’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그런 거 따지지 않아요.’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린애한테 술을 사다니!」
「아냐, 자기가 원해서 사주는 거니까 어린애면 어떻고 학생이면 어때? 난, 단지 광주까지 가서 하루 일당을 벌면 그만이지.」
‘아저씨는 운전하니까 술 마시면 안 되죠?’
‘응, 그런데 너 혼자 술 한 병을 다 마실래?’
‘한 병이 어때서요? 한 병쯤은 문제없어요. 깽판 안 부릴 테니까, 걱정 꽉 묶어 두세요.’
‘너, 술주정하거나 오바이트하면 죽는 줄 알아!’
‘아저씨 그런 걱정 마세요. 아저씨, 저랑 친구해요! 저 참 잼 있어요. 그리고 끝내줘요.’
‘내 너하고 친구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너, 너무 과한 거 아니냐?’
‘지금부터 아저씨는 나하고 친구예요! 하, 하, 하 좀 알딸딸하지만 멀쩡해요. 잠이 오려고 하네요.’
‘야, 잠자기 전에 광주 어딘지를 말을 해야지!’
‘하, 하, 하 아저씨는, 광주 하면 금남로고, 금남로 하면 황금마차 아닙니까? 금남로 황금마차로 고고!’
「지금 내가 왜 이러지? 이 학생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지금 내가 하는 짓이 학생을 위한 것인지 내가 돈을 벌기 위한 짓인지 모르겠네.」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 학생이 가엾고 내가 처량하다.」
‘어이, 학생! 금남로 다 왔어!’
‘아∼ 예, 아저씨! 황금마차에 같이 들어가요.’
‘내가 왜 너랑 황금마차에 들어가? 난 빨리 요금 받아서 서울로 올라가야지.’
‘택시 요금을 황금마차 사장님이 주니까 황금마차에 들어가야지요.’
‘어이, 참, 재수 없게, 누가 보면 내가 너 보호자인 줄 알겠다.’
‘아! 잘 됐다. 아저씨가 나 보호자 해 줘요.’
‘내가 왜 너 보호자가 돼? 어림도 없다. 난 빨리 서울로 올라가야 돼!’
‘그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옆에 계시기만 하면 돼요.’
‘가만이고 저만이고 내가 왜 너와 같이 가?’
‘아저씨, 아까, 저랑 친구 하기로 했잖아요. 친구끼리 그러면 돼요? 서로 도와야지!’
‘야 시끄러! 친구는 무슨 친구? 하여간에 황금마차 다 왔다. 일단 같이 내리자.’
‘우와! 우리 아저씨 최고!’
「무슨 계단이 이렇게 어두워!」
‘야! 날 꼭 잡아라.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아저씨는∼. 뭐가 어둡다고 해요? 적응이 안 돼서 그래요.’
「하필이면 왜 깍두기 머리를 했지?」
「영, 마음에 안 드네.」
‘사장님, 오전에 전화 드린 미경이에요’
‘인마, 혼자 내려왔어?’
‘예, 다른 애들은 다른 데로 빠졌어…….’
‘그래! 인마, 민증 가져왔어?’
‘여기요’
‘야! 인마! 아직 미성년이잖아! 요새, 단속이 얼마나 쎈데 이런 민증을 가지고 다녀?’
‘바꿀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요? 82년생이라면 다른 데는 아무 이상 없었는데….’
‘야! 인마! 요새 쎄서 안 돼!’
‘서울서 내려왔는데 한번 봐 주세요. 사장님!’
‘야! 인마! 너 봐주다가 내가 딸려 간단 말이야. 그러니 다시 올라가!’
‘사장님! 택시 대절해 갔고 왔단 말이예요! 택시비도 없는데 어떻게 해요?’
‘인마, 택시비 없는 거는 너 사정이지 내 사정이냐? 인마, 잔소리 말고 빨리 나가!’
「깍두기 사장이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건지, 자기 잇속만 차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그런데 난 무엇에 주눅이 들었는지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네.」
「밖에 나오니 세상이 왜 이렇게 밝지?」
‘아저씨는 사장님한테 무슨 말을 해야지요!’
‘아니, 왜 내가 그 깍두기 사장에게 말을 해?’
‘내 조카라던지, 여동생이라든지 라고 해서 취직이 되게 해야죠!’
‘조카도 아니고 여동생도 아닌데 내가 왜 너를 감싸냐?’
‘아휴! 사차원 진상 같으니라고!’
‘야! 그러나저러나 이제는 어떻게 하니?’
‘뭘 어떻게 해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죠!’
‘그러면 택시비는∼?’
‘에이 쌍! 지금! 택시비 타령이예요? 빨리 올라가 다른 데를 쑤셔 봐야죠.’

“그래서 그냥 서울로 올라오셨나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날탕으로 올 수밖에요. 이런 게 다 돈 없는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일이라고요.”
“택시비와 여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 열 받게 할 일 있으세요? 택시비는 고사하고 다른 덤터기까지 곱빼기로 쓰고 말았는데 택시비는 무슨 택시비!”
「사실 이 손님에게 열 낼 필요는 없지. 내가 뭐에 홀려 지랄을 부렸으니…」

‘야! 이제는 어떻게 하니?’
‘아저씨∼,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서울로 올라가면서 생각해용∼.’
「아니, 이게 미쳤나? 뜬금없이 웬 애교?」
「왠지 미친개한테 물린 것 같다.」
‘그런데 난 뭐냐?’
‘아저씨∼! 아저씬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흑기사지용.’
‘야! 징그럽다. 코맹맹이 소리 그만해라! 모르겠다, 서울로 가자!’
‘우와! 아저씬 짱이야! 서울로 고고!’
「저런 철딱서니 없는 것 같으니라고…. 참, 신도 나겠다!」
「근데, 왜 내가 울화통이 치밀지? 쌍!」
‘아저씨! 얘기 좀 해요! 심심하잖아요. 내려올 땐 잘하시더니 갑자기 벙어리가 됐어요?’
‘야! 지금 말할 기분이 나냐?’
‘아저씨, 사실 나도 말할 기분 아니거든요. 그래도 아저씨와 같이 몇 시간 이렇게 지내니 마치 친구 같고 애인 같고 그래요.’
‘야! 뭐라고? 친구∼. 애인∼. 지금 너 미쳤니? 내가 왜 너 애인이구 친구냐?’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괜히 짜증이셔! 그건 그렇고, 아저씬 서울 가서 뭐 할래요?’
‘뭐 하긴, 곧바로 집으로 가야지.’
‘아저씨 나 배고픈데….’
‘그래서! 어쩌라고?’
‘아저씨, 밥은 먹고 들어가야지요?’
‘내 걱정말고 너 걱정이나 해!’
‘에잉∼! 아저씬! 내가 배고프면 아저씨도 배고프지!’
‘남의 걱정 꽉 묶어 놔! 아무튼 난 네가 배가 고프든 말든 집으로 곧장 갈 거야!’
‘에헤! 난 알아요. 아저씨가 저녁을 사줄 것을….’
‘뭐! 어떻게 알아?’
‘아저씨가 저녁을 안 사줄 거면 지금까지 왜 이렇게 같이 있었겠어요?’
‘같이 있다고 저녁을 사줘?’
‘그럼요! 아저씨는 저녁도 사주고 3일 동안 내 서비스도 받아야 해요.
‘뭐라고? 3일 동안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이게 정말로 확 죽여 버릴라!!’
‘차라리 죽는 게 났지요! 서울 가면 갈 곳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데 아저씨한테 죽으면 기분이나 좋지요.’
‘야! 이 빈대 같은 인간아! 누구 뒤집어 죽는 꼴 봐야겠니? 아이고! 나 죽겠네!’
‘지금 아저씬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내 맘을 이해해 주는 분이잖아요. 그러니 적어도 3일은 아저씨한데 서비스를 해야죠.’
‘야! 인마! 나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야! 난 서비스도 싫고 이해 안 해 줘도 좋아! 그러니 유일한 사람이 어떻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어떻고, 아저씨한테 죽으면 기분이 좋다느니 하면서 공갈치지 말고 절대로 날 엮으려 하지 마, 짜식아!’
‘아저씬 내가 지금 공갈치는 줄 아세요? 난 지금 심각하단 말이예요. 그러니 아저씨 맘대로 하세요. 난 어쩌거나 아저씨와 같이 있어야 해요.’

“와! 참 재미있는 스토리로 전개되는군요. 같이 있겠다는 건 동거를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 결국, 동거를 했습니까?”
“지금 동거가 중요해요? 택시비도 못 받고, 사납금도 쌩돈으로 처박아, 빈털털인 판에….
“택시비, 사납금보다 동거가 얼마나 멋져요! 어떤 러브스토리 같잖아요.
“손님에겐 러브스토리로 들릴지 모르나 학생과 나에게는 피눈물 나는 스토리입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요?”
“하긴 그렇지만, 관련 없는 사람에게는 동거가 재미있는 관심거리지요. 좌우지간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요? 미성년자 학생하고 어떻게 동거를 해요? 1주일 동안 밥 사주고 찜질방에 잠재워 줬죠.”
「동거라기는 뭐 하지만 모텔에서 사실 두 번 잤다.」
“동거라고 해서 한끝 기대를 했는데 그냥 그렇고 그렇게 끝났네요.”
「손님이 눈치를 챘나? 눈치채도 상관없다. 동거는 학생이 먼저 하자고 한 거고…. 어떻게 보면 나는 선을 베푼 거니까!」
“손님!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마시고 국회의사당에 갈 생각이나 하세요.”
“아직도 데모가 풀릴 것 같지 않지요?”
“풀리기는커녕 더 심해지네요. 손님 이러다간 오늘 중 여의도에 가기는 틀렸네요. 그러니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시죠.”
“다른 기사들은 데모에 걸리면 마냥 서서 메다만 올라가기 바라는데 당신은 양심적이네요. 그렇게 하면 언제 돈을 벌어요?”
“아무리 그래도 양심이 있지요”
“양심은 무슨 양심!, 어떤 기사들은 신호등에 걸리려고 일부러 천천히 가기도 합디다.”
“맞아요, 큰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한 번 걸리면 200원이 더 올라가지요.”
“그것 보세요. 또 차가 막히지도 않는데 안전운전이라고 40킬로로 서행을 해요.”
“시간과 거리를 병산 하니까 같은 거리를 서행하면 보통 200~300원 더 나오죠. 경우에 따라서는 1000원 이상 더 나올 수도 있어요.”
“바빠서 택시 탔는데 천천히 가고 신호등에 걸리고 하면 누가 택시를 타겠어요? 정말로 양심 없는 택시기사들도 많아요.”
“그런 사람도 있지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요새 택시기사들 힘들어요. 이해를 해 주셔야 돼요.”
“기사 양반 같은 사람이라면 이해를 하지요. 그렇지만 얄미운 기사들 때문에 모든 기사들이 욕먹어요.”
“하여간 국회의사당에 가기가 어려우니, 손님, 지하철을 타고 가시죠?”
“기사 양반처럼 양심적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요? 기사 양반 마음 씀씀이가 좋아 내가 오늘 국회의사당까지 대절을 하지요.”
“아! 그럴 필요 없습니다.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이 있는데 왜 택시를 대절해요?”
“기사 양반이 맘에 든다고 했잖아요. 맘에 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미안해서….”
“미안해할 거 없어요. 오늘 하루 일당 17만 원에 대절합시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선불은 안 주는 모양이지? 하여간 고맙다.」
「이 양반 좀 이상한 사람 아냐? 지하철을 타면 빨리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왜 대절을 한다고 해? 아마 제정신이 아닌가 보지?」
「난 아무 상관 없다. 차가 막히는 것은 데모 때문이고, 대절은 손님이 했고, 뭐 그렇고 그런 거지.⌟
「모든 일이라는 게 다 자기 배짱 꼴리는대로 사는 거 아니겠어?」
“데모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지요? 광우병에 목숨 걸었군…. 진보 좌빨들이나 맹박이나 모두 막가파로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판이야.”
“끝나기는요. 죽창으로 사람 죽이겠네요. 화염병도 날고 물대포도 쏘는데요. 이렇게 심해지면 국회의사당 가기가 정말 어렵겠어요. 손님! 죄송해서 어떻게 하지요?”
“죄송해 할 것 없어요. 기사 양반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뭣 때문에 미안해합니까? 정말로 사과하고 미안해야 할 놈들은 데모하는 놈들과 맹박정부지요.”
“이젠 데모가 아니라 전쟁이네요. 차마 못 봐 주겠네요. 진보 좌빨이나, 강주갑이나, 맹박이나 모두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안 되고말고요. 저러면 우리나라 거덜 나요. 지금까지 쌓아놓은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달했습니까?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에 지금처럼 잘살아 본 적이 있어요? 10대 세계 경제 대국, 3대 자동차 수출국, 제일의 아이티 강국, 제일의 조선건조 강국, 세계 2대 제철강국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은 배고파 죽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만큼 잘 사는 것만은 사실이잖아요?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다 박정희 덕이 커요.”
“선생님 같은 분을 뭐라고 하던데……. 보수 뭐라더라……. 아! 맞다! 보수꼴통! 선생님은 보수꼴통이신가 봐요. 잘 된 것만 말씀하시니 말이예요. 사실 잘살게 되기는 됐지만 여기저기서 못 살겠다는 말도 많아요. 노숙자, 학생 소녀 등등 아까 말했지만,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말로 우리 기사들도 힘들어요.”
“글쎄요∼. 내가 보수꼴통인지는 모르겠으나, 날 보고 보수꼴통이라 해도 난 좋아요. 왜냐면 우리 5000년 역사 중 보수꼴통 아니고 누가 이렇게 발전된 나라를 만들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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