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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신작소설6] 통지표
[신덕재 신작소설6] 통지표
  • 신덕재 중앙치과의원장
  • 승인 2019.01.06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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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재 원장
신덕재 원장

 백대도 지친이라는 엄마의 예지로 만영당(萬靈堂)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됐다. 무일푼 피난살이로 남 타성한테 빌어먹는 것보다는 생면부지일망정 지친 붙이에 가서 동냥을 하는 편이 낫다는 엄마의 생각에 따라 이곳에 오게 됐다. 만영당은 이 근동에서 명약이라고 소문이 난 한약방으로 이곳에서는 유일무이한 곳이며 사람들 간에 명성이 뜨르르하는 집이다.
 애걸을 하다시피 간청을 하여 문간방을 얻어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됐고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게 되어 끼니 굶는 것을 면하게 됐다.
 6월의 장맛비가 누적누적 내리고 있다. 비 오는 날은 좋다. 엄마는 안댁 빨래를 안 하고 몇 푼 안 되지만 노끈을 꼬아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다. 교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에는 2학년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는 노끈을 꼬고 있었고 나는 가마니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중석아, 일어나 부대 좀 풀러라.”
 노끈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호물자에서 나온 마대자루를 풀어야 하고 풀은 끈을 엉키지 않도록 한 뭉치씩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이 뭉치의 끈을 두서너 개씩 엮어서 굵게 노끈을 만든다. 전에도 해 보았지만 마대자루 푸는 일이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다. 우선 냄새가 별로 좋지 않다. 가마니에 묻은 흙냄새도 아니고 이상한 구린내가 난다.
 “비만 오면 핵교에 안가니 공부는 언제 한다냐? 공부는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
 “요새 핵교에서는 뭘 배우냐? 진사 댁 손녀는 구구단을 외우는 모양인데 너도 배웠냐?”
 “______”
 “왜 꿀 먹은 벙어리냐. 어디 이 애미가 문제를 내 볼 테니 마쳐볼래?”
 나는 슬며시 겁이 났다.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웠는지조차 모르는데 문제를 낸다니 말이다. 엄마가 문제를 안 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내더라도 내가 아는 문제를 냈으면 하는 생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는 꼬든 노끈 줄을 작게 자르더니
 “두 줄 노끈을 세 가닥씩 꼬면 노끈은 모두 몇 줄이냐?”
 허 참 이게 무슨 셈본 문제란 말인가? 이건 이야기이지 셈본 문제일 수가 없었다. 문제가 아니니 답이 나올 수도 없다.
 “------”
 “잘 생각해 봐, 구구단도 배웠다고 하니 쉽지 않느냐”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았는데 ―-”
 “뭐라고 배우지 않았다고? 그럼 한 줄씩 세 보지도 못하냐?”
 “세여 볼라고 해도 노끈 줄이 꽁꽁 꼬여서 셀 수가 없는데―-”
 “에이 이 멍청한 놈 같으니!”
 순간 노끈타래가 날아왔고 마대자루가 휘 날렸다.
  “다 그만 뒤라, 이놈아. 하나 둘도 못 세는 놈이 공부는 해서 뭘 하냐. 저런 놈을 믿고 이 고생을 하면서 핵교를 보냈으니 이년이 미친년이지.”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잘하는데 ―-”
 “뭐가 어쩌구 어째, 핵교 공부 다르고 집안에서 하는 공부가 다르냐?”
 나의 터무니없는 말 한마디는 엄마의 분노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빗자루 세례를 받아야 했다. 엄마의 노기는 단순히 셈본 하나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 하나 있는 것이 천치 모양 제구실을 못 할 것 같은 염려 때문이었다. 매를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언뜻 엄마를 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너가 아니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한단 말이냐, 너 하나 잘 되는 것 보려고 이 고생을 하는데 ---”
 나도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픔이 계속되었고 울지 않으면 엄마의 매가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엄마의 눈물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훌적훌적 울면서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 엄마 똥 ―-”
 “나가 싸! 앞으로 공부를 그따위로 했다간 다리몽댕이 부러질 줄 알아라.”
 추상같은 호령이었으나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는 사실에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허리춤을 부어 잡고 뒷간으로 향했다.
 뒷간은 헛간 옆에 있었고 뒷간 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서 매번 삐거덕 소리를 냈다. 오지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그 위에 널판지를 놓아서 발판을 만들었다. 똥통 뒤에는 항상 똥바가지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어져 있다. 뒷간에 갈 적마다 그 똥바가지가 귀신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뒷간에 갈 때는 삐걱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만히 문을 열고 똥바가지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아래로 깔고 뒷간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요란한 삐거덕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귀신같은 똥바가지도 무섭지 않았다.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허리끈을 풀고 쭈그리고 앉고 나서야 이제는 나 혼자만의 세상이 됐구나 하는 해방감에 싸일 수 있었다.
 눈물을 닦고 엉성한 뒷간 문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제야 엄마의 눈물이 떠올랐고, 혹시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내다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아니야,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나 피난길에서 아이들을 버리는 엄마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우리 엄마도 그런 엄마들과 같을까? 새로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니 나오려던 똥도 나오지 않고 엉덩이에는 차가운 한기만 느껴졌다.
 똥도 나오지 않고 비 때문에 밖에 나가 아이들과 놀 수도 없고 해서 손가락으로 뒷간 바닥을 긁적긁적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담 넘어 뒷집 진사 댁 손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
 진사 댁 손녀도 학교에 안 간 모양이구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노랫소리 같은 그 아이의 소리에 맞추어 숫자를 써내러 갔다. 그때였다. 나는 머리 위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고 차가운 샘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는 시원한 감을 느꼈다. 이는 순간적 찰나였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사이 팔, 사삼 십이, 사사 십육 ―-”
 구구단이 술술 이어졌다. 그것도 진사 댁 손녀의 2단보다 높은 4단이니 말이다. 아직도 진사 댁 손녀는
 “이육 십이, 이칠이 십사, 이팔이 --- 십육  ---”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뒷간을 뛰쳐나왔는지 모른다. 옷을 추수렸는지 밑을 닦았는지 뒷간 문을 닫았는지도 모르고 한달음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나 구구단 다 외워요. 자 보세요. 오일은 오, 오이 십, 오삼 십오, ---구칠이 육십삼, 구팔이 칠십이, 구구 팔십일.”
 엄마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지리 궁상으로 울고만 있던 내가 아닌가. 놀란 엄마는 그래도 미심쩍었던지 다른 문제를 냈다.
 “그럼 네묶음이 다섯이면 얼마냐?”
 “스믈이요”
 나는 당당하고 또렷하게 대답했다.
 “허참 그것 이상도 하지, 귀신에 씌웠나 ---.하여간에 내가 너 때문에 살아간다.”
                   *                     *                  *
 학교 전체가 무슨 난리가 난 것 같다. 교실에 붙은 그림과 글씨들을 가린다, 교단 위의 태극기며 교훈까지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야단법석이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대단히 높으신 분이 온다고도 한다. 운동장의 돌멩이며 지푸라기며 깡통 조각이며 너저분한 것을 줍고 복도도 초칠을 해 돌멩이로 문질러 반들반들하게 하면서 떠들썩이다. 총채로 유리창에 먼지를 털어 내던 나에게는 이런 수선보다는 교실에 들어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기다려지고 신바람이 나는 일이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하루는 철봉 근처에서 다음날은 국기 봉 근처에서 옹기종기 모여 공부를 했다.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옆의 아이들과 히히덕거리며 장난하는 것이 전부였다.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내용에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전날 강가에 나가 미역감으며 물싸움하던 얘기며 지난밤 참새 집털이가 더 신났고 즐거운 것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고학년이 없어서 교실에 들어가면 정말로 공부하는 기분이 났다. 까만 칠판에 흰 백묵으로 글씨를 써 가며 선생님이 무엇인가를 가르칠 때는 학교가 정말로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교실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공부보다는 걸상과 책상이 있어서 진사 댁 손녀와 같은 책상을 쓸 수 있다는 데 있다.
 진사 댁 손녀는 공부를 잘했다.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라 예뻤다. 그 아이는 얼굴에 버짐도 없고, 머리도 더부룩하지 않고, 맵시 있게 짧은 머리를 두 갈래로 따서 댕기를 묶고 다녔다. 나의 머리는 기계충 때문에 땜통이 있었고 돼지털 같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뒤엉켜 있었다. 나는 항상 진사 댁 손녀의 머리댕기에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머리를 손질했길래 저렇게도 가지런하고 물기가 항상 촉촉하게 머금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래서 몰래 댕기를 한번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잡아당기지 못했다. 행여 교실에서 같이 앉고 싶지 않다고 선생님에게 고자질 할까봐 댕기를 잡아당기고 싶어도 잡아당기지 못했다.
 오늘은 진사 댁 손녀와 같이 책상에 앉을 수 없었다. 무슨 일제고산가 뭔가 하는 날이어서 한 책상에 한 사람씩 앉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전하다. 두리번거리며 진사 댁 손녀를 찾았다. 그 아이는 저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모두 머리 돌리지 말고 조용히 눈 감고 있어요.”
 무서운 호랑이 같은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았다. 도대체 일제고사라는 것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재미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기를 못 쓰게 만들어 놓고 시험을 본다니 호랑이 같은 시험감독 선생님이 승냥이처럼 느껴졌고 시험 볼 기분도 나지 않았다. 진사 댁 손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눈을 감고 있을까. 나를 보고 있을까. 지금 진사 댁 손녀도 책상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으니 좋겠다. 전에는 나하고 조금이라도 책상을 더 차지하려고 아옹다옹도 했는데. 진사 댁 손녀가 궁금하여 실눈을 살며시 뜨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때 승냥이 같은 선생님이 언제 왔는지
 “눈감아!”
 나는 질겁을 하여 벌떡 일어날 뻔했다. 선생님이 언제 왔는지 한 팔에 시험지를 척 걸치고 와서는 책상에 시험지를 놓고 갔다. 그때 땡땡땡하고 종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눈을 뜨고 시험지를 푸세요”
 나는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실눈을 떴다 선생님한데 들켜 눈을 감은 후 눈에 너무 힘을 주어 막상 눈을 떴을 때는 눈까풀이 아프고 눈알에서는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눈을 떴는데도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세상이 깜깜하고 눈앞에서는 동고란 물 파도가 치고 있었다. 얼마가 지나자 앞의 아이들이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시험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아이구 나도 시험지를 풀어야지. 그런데 어디서부터 문제를 푼단 말인가. 시험지는 두 장인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살며시 곁눈으로 진사 댁 손녀를 봤다. 그 아이는 내가 보는지도 모르고 시험지와 씨름을 하고 있다. 진사 댁 손녀가 정신없이 문제를 푸는 것을 보니 나도 빨리 시험지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시험지는 두 장이었다. 한 장은 셈본에 관한 것이었고 한 장은 그림과 글씨가 뒤섞인 문제였다. 셈본 문제는 지난번 엄마로부터 치도곤을 당해서 그러한지 어렵지 않게 풀었다. 그런데 다른 한 장이 문제였다. 그림을 그려놓고 그 밑에 네모 칸을 그려놓았다. 기차 그림을 그려놓은 네모 칸에는 ‘기차’라고 썼다. 그런데 이상한 그림이 하나 나왔다. 요강 같은 그림 밑에 네모 칸을 두 개 그려놓았다. 시험에 요강이 나올 리는 없는데 우리 집 요강과 똑같은 그림이 있었다. 우리 집 요강에도 꽃이 그려져 있고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 시험지의 그림에도 똑같은 물고기가 있고 꽃 같은 풀이 있었다. 그림도 같고 네모 칸도 두 개니 ‘요강’이 틀림없는 답이었다. 나는 네모 칸에 ‘요강’이라고 썼다.
 “야 물이 있고 그 속에 물고기가 있고 물풀이 있는데 답이 이거란 말이냐?”
 언제 왔는지 승냥이 같은 선생님이 옆에 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왜 선생님이 웃고 그런 틀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려면 가만히 나에게만 할 것이지 왜 진사 댁 손녀까지 들으라고 크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 이 선생님네는 요강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러면 밤마다 뒷간을 가야 할 텐데. 얼마나 무서울까? 하여간 요강도 모르면서 공연히 나를 나무라니 기분이 상했다. 머뭇거리며 뒷통수를 긁적긁적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더 크게 웃었다.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의식중에 진사 댁 손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왔다. 시험지를 다 풀었는지 못 풀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웃음소리와 진사 댁 손녀의 눈망울을 보고서는 더 이상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창밖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종이 땡땡땡 쳤다. 아이들이 몰려나왔고 그 속에 진사 댁 손녀도 끼어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그 아이에게로 가서 물었다.
 “너는 무어라고 썼니?”
 “어항이잖아.”
 “어항?”
 “그래 어항.”
 “어항이 뭔데?”
 “어항이 어항이지 뭐야. 물속에 물고기를 담아두는 어항 말이야.”
 “어항을 무엇에 쓰는데?”
 “무엇에 쓰기는 그냥 보고 즐기는 거지.”
 “어항을 보고 있으면 즐거워지는 거야?”
 “아이 몰라, 즐거워지고 안 지고가 무슨 문제야, 답이 어항이니까 어항이지”
 나는 두개의 네모 칸에 답이 “요강”이 아니고 “어항”이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                  *
 나는 색 바랜 옛날 와이셔츠 상자에서 40년 전 통지표를 보게 됐다. 평가 난에는 “우(優)”라고 적혀 있었다. 각 과목마다에는 가로로 가, 나, 다로 등급이 매겨져 있는데 빨간 동그라미 표시가 주로 “가”에 찍혀 있었다. 또 그 옆에는“두뇌가 명석하고 고집이 있음”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일이 떠올랐다.
 “부장님, 전무님이 부르시는데요”
 “아, 그래.”
 나는 전무님이 갑자기 부르는데 의아해하면서 전무실로 향했다.
 “아, 김 부장. 이리와 앉아요.”
 전에 없이 친절하다. 전과 같으면 문을 여는 순간 매서운 전무님의 눈초리에 기가 질리고 또 무슨 꾸지람과 질책이 떨어질까 두려워 자기도 모르게 슬슬 기게 되는데 오늘은 의외로 편안하다. 아마 전번 말레지아 프랜트 건이 잘된 모양이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갖은 비위을 다 맞추고 비굴할 정도로 접대를 해 주었는데. 자기들이 리젝트 할 수 있을라구, 암 없구 말구.
 “전무님, 부르셨습니까?”
 “아, 네, 김 부장. 김 부장한데 부탁이 있어서 불렸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다름이 아니라, 회사 사정이 좋지가 않아서---. 전번 말레지아 건도 리젝트 되고---.”
 “---김 부장, 명퇴하는 게 어떻겠소. 김 부장 같으면 나가서 자립을 해도 충분할 것 같고---. 김 부장이 자립을 한다면 우리 그룹에서 도와줄 수도 있으니 말이요.”
 나는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다 전무실을 나왔다.
 어머니와 진사 댁 손녀가 있을 때는 나의 성적표가 우(優)더니 엄마도 없고 진사 댁 손녀도 없는 지금의 성적표는 명예퇴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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