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20 (목)
김영진 의학에세이[12]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12]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5.18 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1. 현대의학으로의 발전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1796년 영국의 ‘제너’는 우두에 걸렸던 소의 젖을 짜는 여자들이 마마에 걸리지 않는다는, 예로부터 전래된 사실에 착안하여 우두법(종두법)을 개발하고 그 면역기전을 규명함으로써 면역학의 기초를 이룩했다.

제너가 우두법을 개발하자 처음에는 우두 접종을 받으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는 헛소문이 돌았다. 이처럼 제너는 상당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당했다.

특히 성직자들로부터 병든 짐승의 분비물을 사람들에게 주입한다는 것은 혐오스럽고 신을 섬기지 않고 배반하는 사악한 일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신이 천벌로 내린 전염병을 인간이 극복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후 매독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전염병의 치료법이 발견될 때마다 유사한 논리가 계속 등장했다.

수많은 조롱과 비난, 그리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두법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제너의 천연두 면역이론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 지 불과 몇 년 뒤에는 멕시코, 필리핀, 중국 등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여러 국가의 오지에서도 우두 접종이 실시되었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년 5월 17일 ~ 1823년 1월 26일)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년 5월 17일 ~ 1823년 1월 26일)

한때 천연두가 그랬던 것처럼 우두 접종이 그 이후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다. 가령 1805년 나폴레옹이 전쟁을 앞두고 전군에 우두 접종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천연두에 의한 병력손실로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이후 제너는 의사로서의 모든 활동을 포기하고 우두 접종에 관한 연구와 확산 노력에만 전념했다. 영국 정부와 의료계에서는 그의 헌신적인 연구들 돕기 위해 후원금을 내놓았다. 1803년에는 천연두 백신 보급을 위한 ‘제너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 기관은 1808년에 ‘영국 국립 백신 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이 종두법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 정부는 1853년에 영국의 모든 어린이에게 강제적으로 우두를 접종하도록 법으로 규정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