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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의학에세이[16]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16]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6.1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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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현대의학으로의 발전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19세기 종반이 되도록 인간은 인체 내에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킨 병원균을 사멸시킬 수 있는 약물은 겨우 두 가지밖에 갖지 못했다. 그것은 말라리아 병원충에 대한 ‘키니네’와 아메바성 이질에 대한 ‘토근’으로써 두 가지 모두 식물에서 얻은 것들이었다. 그나마 작용기전은 알지 못하고 다만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1910년에 이르러서야 세균에 대항할 수 있는 인류의 세 번째 약물이 개발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살바르산’이다.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년~1915년)’는 독일의 미생물학자이며 면역학자로서 ‘설폰아마이드’ 류로 대표되는 화학요법의 창시자이다.

독일 슐레지엔에서 출생하였고 브로츠와프, 스트라스부르, 프라이부르크, 라이프치히의 각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청년 시대부터 색소에 의한 조직 염색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가열염색 결핵균표본이 인연이 되어서 한때 ‘코흐’의 연구소에 초빙되어 면역학(免疫學) 연구에 종사했다.

뒤에 ‘베링’의 청에 응하여 항독소 혈청 제조기술의 개량에 성공, 베를린 교외 스테그리츠 국립 혈청검정 겸 혈청연구소 소장이 되었으며, 이어서 이 연구소의 규모를 확대하여 이전(移轉)한 프랑크푸르트의 실험치료법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파울 에를리히(1854년 3월 14일 출생, 1915년 8월 20일 사망, 61세)
파울 에를리히(1854년 3월 14일 출생, 1915년 8월 20일 사망, 61세)

그동안 혈청 검정법·면역단위를 확립하여 오늘날 각국에서의 검정법의 규범을 만들었다. 또 면역반응의 이론으로서 측쇄설(側鎖說)을 제창했다.

1906년, ‘스파이엘’ 부인의 기증에 의하여 연구소를 설립하고, 여기서 화학요법 연구를 추진하여 1910년 매독 치료제인 아르스페나민(arsphenamine;3-아미노-4-옥시페닐아르손산(酸)의 환원으로 얻어지는 담황색 분말)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606번째 실험에서 합성에 성공하였으므로 606호라고도 호칭되는 살바르산을 발명함으로써 화학요법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1908년 ‘메치니코프’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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