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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2 Tree in the Wind
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2 Tree in the Wind
  • 사진작가 임창준
  • 승인 2023.02.27 0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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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여의도 한강 변에서 촬영했다. 필자는 요즘 목요일 저녁 시간에 노숙자 환우들 진료하러 가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오후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평소대로 오전 진료를 마치고 차를 몰고 가다 보니 여의도와 올림픽 대로 사이의 습지는 온통 연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 벌써 봄이 왔구나···”

그렇다. 엄동설한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 사이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눈보라와 동장군의 세찬 기세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다가 봄기운과 함께 생동하는 나무들과 꽃 그리고 풀, 여기에 화답하듯 날갯짓하며 기지개 켜는 새들··· 초봄의 거친 바람을 견디어 낸 후 햇빛과 미풍 속에서 부활하는 모든 생명체는 거룩하기까지 하다.

Tree(버드나무) in the wind, 120x80cm, Archival Pigment Print, 208 서울 한강
Tree(버드나무) in the wind, 120x80cm, Archival Pigment Print, 208 서울 한강

그날 치과 진료소에 가보니 마침 약속된 환자들이 한 분만 오고 나머지는 모두 취소되어 일찍 마치게 되었다. 촬영 장비를 차 속에 항상 가지고 다닐 때라 마치자마자 한강 변으로 달려갔다. 그날따라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와 함께 세찬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습지 속의 그 많은 버드나무의 새싹들은 이리저리 휘몰리면서도 반짝반짝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사진>.

이 작품은 언젠가 단체전에 출품된 적이 있었다. 진료하느라 진행자에게 설치를 맡기고 저녁 시간에 도착했는데, 40대 후반의 갤러리 큐레이터가 내 작품을 가리키며 작가분이 어느 분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밝혔더니, 설치 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내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고 한다.

임창준 작가
임창준 작가

“와아, 아까 이 작품을 처음 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게 울컥 하더라구요. 여린 나뭇잎들이 세찬 바람 속에 휘날리는 모습이라 그랬나 봐요. 작품을 보다 보니, 제가 20대, 30대에 고생하던 일들이 머리속으로 바람처럼 흘러가더군요. 작품 가운데 꿋꿋이 서 있는 작게 보이는 나무줄기가 마치 제 모습 같았습니다.”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 고난을 겪으며 얻었던 울화병과 우울증, 사회 부조리에 대한 무력감, 바쁜 생활 속에서도 혼자 느끼던 불안감과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많은 이들이 사진이나 예술 작품을 보며 위로와 안정을 찾곤 한다. 작품 속의 대상들을 살피고, 그들과 동화되다 보면 좌절, 슬픔, 분노 등의 격한 감정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진, 선, 미의 세계로 들어가며, 상처받고 구겨졌던 마음의 표면들이 깨끗하게 펴질 수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자신의 사연을 보내주신 분에게는 프란치스코 출판사에서 발행된 사진 묵상집 ‘라베르나’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사진= 이엔이치과 원장·사진가 임창준(boneban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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