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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3 Foggy Trees(안개 속의 나무들)
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3 Foggy Trees(안개 속의 나무들)
  • 사진작가 임창준
  • 승인 2023.03.20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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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Foggy Trees(안개목들) 1
그림1. Foggy Trees(안개목들) 1

이 세 번째 작품은 2017년 경기도 시흥골 생태 습지에서 촬영하였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근처에는 ‘미생의 다리’라고 잘 알려진 ‘늠내물길 자전거다리’가 있다. 방산대교 아래 동쪽에 자전거 모양으로 조성되었는데, 환상적인 일출 일몰이 유명한 사진 촬영의 명소이다. 미생의 다리란 이름은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 라는 시흥시의 슬로건에서 따온 것이다. 

며칠 전부터 미생의 다리 근처 습지의 촬영계획을 세우고, 2017년 어느 날 새벽 4시경 집을 출발하여 시흥으로 향하였다. 혼자 가는 데다가, 초행길이었는데 어둠 속에 안개가 자욱하여 시계 거리가 얼마 안 되어 조심조심 운전하였다. 그래도 이른 시간이라 차들이 별로 없어 1시간 이상 지나서 방산대교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에는 다리 건너 좌측에 목적지 표시가 되어있었고, 공사 중이라 길이 구불구불했다. 다리를 거의 건너 이제 다 왔나 싶었는데 좌회전 표시가 없어 방산대교를 지나치고 삼거리가 나왔다. 할 수 없이 좌회전 하여 한참 가다가 유턴 후 다시 방산대교 위로 올라탔다. 올라타자마자 얼마 안 가서 차단봉들로 구분해 놓은 우측에 공사 구간 같은 곳이 보였다. 그래서 일단 차를 우측으로 빼며 공사 구간에 세우고 나서 자세히 둘러보니 뒤쪽 도로변에 내리막길이 보이며 길가에 차들이 서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다리 밑에 포장이 안 된 천변 길이 보인다. 

그림2. Foggy Trees(안개목들) 2
그림2. Foggy Trees(안개목들) 2

“아,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차를 움직여 다른 차 옆에 안전하게 주차한 후 삼각대를 포함한 촬영 장비들을 들고, 메고 길을 따라서 걸었다. 걷다 보니 안개 속 여기저기에서 검은 그림자들의 소리 없는 움직임이 가끔 느껴진다. 그들은 다른 사진가들인 것이다. 갯벌 천변이 밀물로 만수가 되고 다리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면 최고의 일출 장면이 펼쳐지게 된다. 그 장면을 담으려 삼삼오오, 혹은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소위 출사를 온 것이다. 

풍경 사진을 촬영하러 갈 때는 며칠 전이나 하루 이틀 전부터 날씨를 잘 살펴야 한다. 원하는 지형지물이나 피사체들을 제대로 담으려면 빛이 좋아야 하며, 특히 일출이나 일몰을 담기 위해서는 수평선이나 지평선 위에 태양이 깔끔하게 보여야 한다. 맑은 날 예보라도 수평선 근처에 안개나 구름, 혹은 미세 먼지가 심해 해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박 날 줄 알고 갔는데 쪽박만 차고 온다’는 표현도 있다. 

그림3. Foggy Trees (안개목들), 40x6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ng
그림3. Foggy Trees (안개목들), 40x6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ng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 풍경 속에서 심상사진을 촬영하려 하기 때문에 비바람이 치거나, 태풍이 오더라도 계획한 날에는 무조건 떠난다. 안개가 자욱하면 더욱 더 좋다. 이날도 안개 속을 달리며 내심 기대가 컸다. 인기척들을 감지하며 미생의 다리를 확인한 후, 나는 반대편 습지 사이 오솔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잠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어슴푸레 오솔길의 윤곽과 습지 들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세 갈래 길 사이로 가로수들이 그 거대한 몸체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와서 몇 컷 촬영을 하였다(그림1, 그림2). 

임창준 작가
임창준 작가

이리저리 옮겨 가며 촬영을 하던 중 오솔길 바깥쪽 들판에 안개 속으로 여기저기 군상들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그림3).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불안과 초조의 어두움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사람들…. 

요셉의원에 다닌 것이 어언 십수 년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 중에는 어제는 대기업의 대표나 중역, 항공기 기장, 행복하게만 보이던 중산층 이상의 행복하던 가족들이 인간사 속의 여러 가지 물리적, 재정적 사고 등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고, 심지어는 주민등록도 상실하고 나라의 기본적인 도움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이들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것은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의 역사의 단편이기도 하며, 오늘 이 순간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유희이다. 

행정부도, 사법부도, 국회도 해결해 주지 못한 채, 사각지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들. 인생길에는 멀쩡해 보이는 누구라도 빠질 수 있는 알아채지 못하는 함정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 유희 속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살아가는 우리는 눈을 보다 더 옆길로도 돌리며, 물론 자신도 그 늪에 빠지지 않도록 두 눈을 크게 뜬 채 주의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나누다 보면 차가운 우리네 삶의 유희 속에 따뜻한 희망도 함께 보태지지 않을까….

(이 사진을 보고 생각나는 자신이나 주위의 사연을 보내주신 분에게는 프란치스코 출판사에서 발행된 사진 묵상집 ‘라베르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글·사진= 이엔이치과 원장·무늬와공간 갤러리 대표 임창준(boneban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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