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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4 Reincarnation 1
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4 Reincarnation 1
  • 사진작가 임창준
  • 승인 2023.04.03 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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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carnation 1(재생), 100x10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_
Reincarnation 1(재생), 100x10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_

‘Reincarnation’이란 단어의 원래 뜻은 죽은 후에 개인의 영혼이나 다른 측면이 다른 삶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몸이나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을 Reincarnation 1(재생)으로 붙인 이유는 육신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정신이나 영혼은 완전히 달라진 상태라는 의미로, 고난과 절망 속에 부정적이던 사람의 마음이 환골탈태하듯이 완전히 달라져서 새로운 삶으로 재생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이 네 번째 작품은 2021년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구 수주면) 무릉리의 요선암에서 촬영하였다. 천연기념물인 돌개구멍은 주천강 하상 약 200m 구간의 화강암반 위에 하천의 윤희와 소용돌이로 발달한 구멍이다. 마치 인생살이의 어려움 속에 살아남은 생존의 흔적과 같고, 주변에는 여러 가지 암석군들이 관찰되었다. 

저자는 이 요선암을 야외 스튜디오라 생각하며 수년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녀왔다. 그곳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곤 했는데, 어느 해 겨울날 풀이 우거질 때는 큰 바위로만 여겨졌던 두 개의 둥근 바위가 원래는 하나였는데 긴 세월을 지내며 쪼개져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순간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헤세의 소설 속 알을 깨고 나오라는 구절이 떠올랐고, 그때가 이 작품이 태동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이 년간 갈 때마다 여러 가지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연출해 보았다. 
피폐해진 온몸과 마음이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려니 알몸으로 표현하여야 사람들 마음에 와닿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또한 두 개의 바위가 깨진 알처럼 보이려면 계절적으로 겨울이 지나 새싹이 나오기 전이라야 바위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곳은 관광지인데다가 사진가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아주 늦거나 이른 시간이어야 했다.

드디어 모델을 서주기로 한 지인과 시간을 맞추어 3월 초 이른 새벽에 떠났다. 그런데 아뿔싸, 춘삼월 만물이 이미 태동한 때인데 그 전날 밤 갑자기 이상 한파로 와서 새벽에 도착하였을 때 차량 외부 기온은 영하 10도 미만으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여튼 산다는 것은 유희와 같고,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쓰고 준비를 해도 맘대로 안되는 것이 세상일이다. 하물며 촬영 하나 하는 것도 이런 상황이니 다른 일들은 오죽할까··· 그래도 몇 년간 준비해온 것이라 오늘의 미션을 완수해야만 했다. 섭씨 영하 10도 미만 속의 돌바닥에 살점이 얼어붙는 가운데 촬영이 진행되었다. 한 컷 찍고 잠시 몸을 녹인 후 다시 찍기를 반복하며 촬영을 마쳤다.

임창준 작가
임창준 작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 작업은 어떤 다른 예술보다도 쉽지 않다. 얼핏 보면 물건 놓고 사진기에 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물 사진도 그렇고, 그냥 좋은 곳에 가서 사진기만 눈에 대고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풍경 사진도 실상은 그 작업을 위해 엄청난 준비와 노력과 혼신의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촬영 작업이 끝난 후에는 후보정과 인쇄, 그리고 액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모두 쉽지 않고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포토샵을 이용하여 후보정을 한 후, 여러 가지 프린트지에 테스트 인쇄를 해 본 후 한지를 선택하여 원래 계획보다 작은 크기로 인쇄를 하였다. 그 후 무게감과 질감을 주고, 보존 상태를 높이기 위한 코팅을 시도하였더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결국 최종 선택한 방법대로 최종 인쇄와 배접, 프레이밍 후 몇 번의 코팅 작업까지 완료하니 전시 3일 전이다. 코팅 작업까지 끝낸 후 최종적으로 액자하는 곳에 전달하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 이제는 액자 집에서 완성되는 대로 갤러리로 옮겨 잘 디피하며 걸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시장에서의 마지막 디스플레이 과정은 마지막 정리이다. 물론 완벽하게 사전에 모의 전시장에서 다 전시해 보았지만 실제 해 보면 또 다른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사진 전시도 삶의 유희 과정 중 하나이며, 그 진행 도중 쉽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사진 작업은 쉽지 않지만 항상 즐거우며, 끝내고 나면 보람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이 사진을 보고 생각나는 사연을 이메일로 보내주신 분에게는 프란치스코 출판사에서 발행된 사진 묵상집 ‘라베르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글·사진= 이엔이치과 원장·사진가 임창준(boneban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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