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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6 Reincarnation 2
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6 Reincarnation 2
  • 사진작가 임창준
  • 승인 2023.05.10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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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carnation 2(환생),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ng, 2021 강원 영월~
Reincarnation 2(환생),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Coating, 2021 강원 영월~

앞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Reincarnation’이란 죽은 후에 개인의 영혼이나 다른 측면이 다른 삶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몸이나 형태를 취한다는 뜻이다.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며, 죽은 후 영혼이 다시 새로운 인간 혹은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사상이다. 사상은 힌두교,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이나 영지주의 등 서양에도 존재했었고, 불교 등 인도에서 유래된 종교에서는 환생을 윤회라고도 표현하는데,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등은 대체로 환생, 윤회를 부정한다. 

지난번 작품 재생(Reincarnation 1)에서는 고난에 빠졌던 사람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으로 재생되는 순간을 표현하였다. 이번 작품 환생(Reincarnation 2)에서는 육신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다음 생의 전혀 다른 몸을 만나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같은 생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육신과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즉 체형, 키, 성격, 습관, 심지어 젠더 조차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달라지는 영적, 육적 변화를 보이고 싶었다. 즉, 일단 재생의 삶을 찾았던 주인공이 또 다른 고난의 늪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여러 가지의 시련과 사연을 이겨내며 새롭게 환생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여러 가지 변화를 택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를 하게 된 동기는 오필리아의 죽음, 비너스의 탄생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 내세에서 환생하듯이, 현생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면 알을 깨고 나오는 용틀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촬영에 적합한 장소로는 수 없이 방문을 하곤 했던 강원도 영월에, 내가 보기에 수천 수만 년 기간 동안에 동강이 난 것 같은 바위가 있고, 또 그 사이에 오목하게 파인 채 잘 닳아 있는 지점이 있어 가장 적합한 곳으로 생각이 되었다. 촬영 모델을 찾아 헤매이던 중 일본에서 의류 전공을 하고 온 조카에게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의외로 관심을 보이며 담담하게 허락을 해 주었다. 

복장은 원래 하늘하늘한 중세 유럽 귀부인의 복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거의 결정을 하였을 때, 우연히 충무로 작은 뒷골목을 지나다 어느 건물 2층에 위치한 한복 대여점을 보았다.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한복에도 관심이 있어 들어가 보았는데, 2층 매장에 들어서며 창가에 따로 전시된 하얀 색 한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본 순간 전율이 느껴졌는데, 그 한복은 주인이 신부용으로 특별히 디자인한 혼인 예복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한 번도 대여 못 한 채 전시만 해놓았다고 한다. 그동안 보았던 어느 서양 옷보다도 세련되고 하늘거리는 반투명의 옷이었고, 면사포까지 있어 마치 태아를 싸고 있는 양막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하였다. 마침 중국인들이 북경올림픽 기간 중 한복을 포함한 한류 문화를 자기네 것으로 오도하고, 동북공정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한복으로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촬영 당일 모델과 샤프론, 그리고 촬영을 도와줄 언론사 대표님을 모시고 새벽에 길을 떠나 났고, 하루 종일 수 없이 많은 컷을 촬영하였는데, 옷 갈아 입을 장소와 촬영장소를 오가며 촬영을 반복하였다. 사실 모델과 샤프론은 생전 촬영 한 번 못해 본 아마츄어였는데, 프로처럼 액션도 해주었고, 요구하는 자세와 표정도 몰입된 채 잘해주어 프로 모델보다도 더 느낌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자라는 것을 보아 왔던 모델인데, 기특하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앞으로 무궁무진한 미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의 젊은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나야말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그리고 중장년을 지나 불과 수년 전까지도 참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그것은 나와 비슷한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온 게 아닌가 싶다. 알고 보면 주위의 누구 하나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고, 각자의 인생사들은 모두 우리나라의 근대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임창준 작가
임창준 작가

요즘 주위를 살펴보면 젊어서 그렇게 쫓기며 뛰던 분들인데, 이제는 나이 들었어도 행복해 보이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사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비록 한반도의 남쪽에 제한되긴 했지만, 한국동란 이후 잦은 외세의 침략이 없이 지낸 것이 어언 70년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평화롭게 지낸 시절이 오천 년 우리 역사에 얼마나 있었을까? 유럽에 ‘팍스 로마나’ 시기가 있었듯이 우리는 한류가 꽃 피듯 성장하는 ‘팍스 코리아나’ 시절을 지내는 것 같다.

요즈음 이른 아침 운동 후, 출근해 나를 신뢰하며 찾아 주시는 환자분들 열심히 오전 진료하다가 간단한 점심 식사 후 갤러리에 잠깐 들러 잠시 평온한 공간에서 조용한 피아노곡들을 듣다 보니, 질풍노도와 같은 시절은 어느새 지나가고, 세상을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오후 두 시가 되어 예약된 분들 진료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여섯 시. 하루의 진료 생활이 끝나는 순간 나의 세컨드 잡인 사진가, 혹은 갤러리스트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저녁은 아침에 싸 온 음식이나 인근 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작업하다가 적당한 때 귀가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이 항상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영등포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에 가보면 지금 이 순간도 노숙자, 장애우,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의 약자들로 가득 차 있고, 그 주변의 골목들은 바로 한 길 건너나 2~3분 지척 거리에 있는 대형 백화점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나마 주민등록도 말소된 채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잃어버린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현생에서 환생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서로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글·사진= 이엔이치과 원장, 무늬와공간 갤러리 대표 임창준(boneban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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