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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는 힐링 그 자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는 힐링 그 자체”
  • 김정교 기자
  • 승인 2023.10.18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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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진료소 소우찬 원장과 김창헌 소장, 차지윤 봉사자를 만나다
(왼쪽부터) 차지윤 봉사자, 김창헌 소장, 소우찬 원장이 이날 유일하게 여성이자 20대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뒤는 문은선 사회복지사.
(왼쪽부터) 차지윤 봉사자, 김창헌 소장, 소우찬 원장이 이날 유일하게 여성이자 20대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뒤는 문은선 사회복지사.

10월 6일 오후 6시.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 사무실 바깥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소우찬 원장이 가장 먼저 들어선다. 밝은 표정의 그는 행정을 돕는 문은선 사회복지사와 오늘 만날 환자를 체크한다. 환자는 모두 6명. 이 가운데 초진이 2명이고, 나머지 환자는 모두 소 원장이 지난주에 봤던 환자다. 김창헌 소장과 차지윤 봉사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무실로 들어온다. 구석에서 콤프레셔와 포터블 진료기구를 꺼내고, 유니트체어를 대신할 간이 휴게 의자를 펴는 그들의 손에 익숙함이 묻어난다. 무영등을 대신할 손전등을 켜자 진료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첫 환자는 강감찬진료소에 처음 왔다. 치아를 살핀 소우찬 원장이 “댁에서 가까운 치과에서 이를 뽑고 오시면 틀니는 여기서 해 드린다”고 안내한다. “여기서 뽑으면 안 되느냐”는 환자의 물음에 “뽑을 수는 있지만 보시다시피 치과 의자도 없고, 진료기구도 충분치 않아서 혹시 피가 많이 나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은선 복지사가 환자를 데리고 나가 다음 진료 예약 시간을 잡는 사이, 소 원장이 기자에게 덧붙인다.

(왼쪽부터) 소우찬 원장, 차지윤 봉사자, 김창헌 소장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소우찬 원장, 차지윤 봉사자, 김창헌 소장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발치 등 일반진료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것도 있으나 인근 치과와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도 한다”며 “여기서 모든 진료를 다 해주면 인근 치과의 환자를 우리가 뺏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봉사에도 배려가 필요하다, 공감한 기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두 번째 환자는 헐렁거리는 틀니가 아프다며 온 50대 중반의 남자. 소 원장이 틀니 끼우는 방법을 알려주고, 차지윤 봉사자가 두부나 달걀후라이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자 “김치는 어떡하냐”고 묻는다. “잘게 잘라서 살살 씹으시라”는 설명을 듣곤 안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 번째 환자는 드물게, 이날 환자 가운데 유일한 20대이자 여성으로 초진이다. 문 복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치아를 뽑기 위해 동네 치과 일곱 군데를 찾았지만 모두 “대학병원으로 가시라”며 발치해 주지 않았단다. 소 원장이 “어려운 게 아닌데 왜 그러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복지사가 “멘탈 문제인 것 같다”고 속삭이듯 말했다. 문 복지사는 “보호자로 어머니가 계시지만 환자보다 더 심하다”고 하자 즉석에서 환자 진료를 위한 작은 회의가 시작됐다.

진료팀이 환자 상태를 놓고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진료팀이 환자 상태를 놓고 긴급회의를 하고 있다.

“일곱 군데 치과에서 발치를 하지 않은 이유가 난발치와 같은 치과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대학병원으로 보낼 필요가 없다, 인근 이수백 고문 치과로 토스해서 발치하고, 한 달 뒤에 틀니는 여기서 해주기로 하자.” 깔끔하게 결론이 났고, 환자는 기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환자는 소우찬 원장이 지난주에 봤던 사람들. 소 원장은 “한 달에 한 번 치과의사 4명이 번갈아 진료하니 다른 치과의사가 진료한 환자를 차트에만 의지해 보게 되는 때가 많다”면서 “지난주에 봤던 환자를 이어서 보니 반갑기도 하고, 내용을 잘 아니까 진료도 수월하다”며 웃었다. 환자들 틀니는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소 원장은 “틀니를 계속 끼고 있어라. 조금 더 지나서 무는 것만 되면 불편함이 없어질 것”이라 응원했다.

여섯 번째 환자는 노쇼. 이곳에도 드믈지 않게 노쇼가 일어난다는 소 원장은 “사정이야 있겠지만 오지 못하면 연락이라도 해 줘야 다른 사람이라도 진료를 받을 건데”라며 아쉬워한다.

어찌 되었건 별 탈 없이 오늘 진료도 끝났다. 땀을 훔치는 소우찬 원장과 김창헌 소장, 차지윤 봉사자가 진료기구를 정리한 뒤 옆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소우찬 원장
소우찬 원장

- 열치 봉사는 어떻게 하게 됐나.

“99년도에 관악구에서 개업했고, 3~4년이 지나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후배 중에 열치 봉사를 열심히 하던 김도윤 선생을 모임에서 만났는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열치 봉사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문래동 비전 트레이닝센터에서 시작했다.

거기 다니면서 조익현 원장이랑 전용선 원장, 이수백 고문 이런 분들과 알게 됐다. 이수백 고문께서 처음에 많이 이끌어주셨는데, 열치 일은 제가 많이 뺐다. 그래서 열치 일은 안 하고 그냥 진료 봉사만 계속 다니는, 약간 아웃 사이더이다. (웃음)”

- 강감찬복지관 진료에는 어떻게 합류했는지.

“코로나19 때문에 봉사활동을 할 수 없었는데, 1년 전쯤에 여기서 진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열치 회장 하시던 기세호 원장께서 여기에 봉사하러 오신다는 거다. 기세호 원장은 서대문 쪽에 계시니 이곳까지 오려면 최소 1시간 이상은 걸리는데, 오는 분도 힘들고, 늦으시면 여기 근무자들도 힘들 거다. 그것보다야 가까이 있는 제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 강감찬진료소가 다른 진료소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많다. 여기는 열악하잖은가, 환경이. 일단은 체어가 없고, 그러면 환자 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이런 데에서는 틀니만 하고, 이도 다른 데 가서 빼고 와야 하니까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기도 한다.

또 잇몸이 안 좋은 사람은 간단히 잇몸 치료라도 하고 틀니를 하면 좋은데, 그런 게 많이 안타깝다. 여건이 된다면 조그만 방이라도 하나 해서, 큰 방은 필요 없다. 그냥 체어 하나 놓고 컴프레셔 놓고, 그렇게 하면 된다.

이곳을 찾는 환자는 대부분 외로운 사람들이고, 멘탈에 문제가 있는 분도 있다. 아까 그 환자도 여기서 의사에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람끼리 대화하는 게 굉장히 좋은 거다. 김창헌 소장이랑 차지윤 봉사자가 20~30분 동안 계속 교육하더니 오늘은 많이 좋아졌다. 

환자와 대화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소우찬 원장이 환자 하소연을 듣고 있다.
환자와 대화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소우찬 원장이 환자의 하소연을 듣고 있다.

사실 틀니 교육을 한다고 해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자기 말만 하고, 그냥 딱 갇혀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들으려고 안 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를 해주는 것도 목적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자기 하소연 하는 걸 들어주는 거다. 그러니까 틀니도 고치지만 정신적으로도 어떤 도움을 주는 거다.

그런 분들 보면 훨씬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격려도 해 줘야 하고 칭찬도 해주고. 그러니까 오는 거다. 이것도 못 해, 라고 혼내고 그러면 안 온다. 폐쇄적이어서 그런 게 있다.”

- 봉사하는 분들은 "내가 좋아서 한다"는데, 어떤 점이 좋은가.
“봉사는 그 자체가 힐링이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지 않는 일이니까 치료를 하면서 마음도 편안하고, 내가 치유를 받고 간다. 내 치과에서 환자와 트러블이 있었어도 여기에 이렇게 왔다 가면 되게 기분이 좋아진다. 스트레스가 없고 내면에 항상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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