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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보내는 경고···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흙이 보내는 경고···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 승인 2024.03.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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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진 사장
김춘진 사장

최근 영화 ‘파묘’가 흥행하면서 지관 역할을 맡은 최민식 배우가 흙을 먹는 장면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일부 지관들은 흙 맛을 보면서 흙에 함유된 미생물이나 미네랄 등으로 토양의 느낌을 보고 명당을 가려내는 경우도 있어서 이를 반영한 설정이라고 한다. 풍수지리를 떠나 ‘좋은 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오늘은 흙의 날이다. 필자가 2013년 대표 발의해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후 올해로 9회를 맞았다. 흙의 날을 3월 11일로 정한 까닭은 숫자 3이 우주를 구성하는 ‘3원’, 즉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3농’(편농·후농·상농)과 농업·농촌·농민 ‘3농’의 의미도 담았다. 11은 열 십(十)과 한 일(一)을 더한 흙 토(土)에서 따왔다. 이때가 영농을 시작하는 시기라는 점도 고려했다. 흙의 날 제정 법률안을 발의한 이듬해인 2014년에 필자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일부 개정을 통해 기후변화가 농업과 농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의무적으로 조사하는 법적 근거를 최초로 마련했다. 두 개의 법안이 담고 있는 ‘흙’과 ‘기후위기’는 언뜻 생각하기에는 동떨어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다.

 흙은 탄소격리 능력이 있다. 말하자면 ‘천연 탄소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흙에 저장된 탄소량은 약 4조1,000억 톤으로, 공기 중 탄소량의 4배 이상이 저장돼 있다. 흙은 탄소를 가둬두기 때문에 기후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은 토양에 따라 다르다. 미생물과 유기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흙은 탄소격리 능력이 높지만, 오염된 흙은 탄소격리 능력이 약해진다. 현재 무분별한 개발,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등으로 오염되고 훼손되는 흙이 늘고 있다. 건강한 흙이 계속 줄어든다면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량이 늘어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UN은 현재 지구의 토양 33%가 훼손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2050년에는 9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흙은 풍화작용을 거쳐 자연적으로 생겨나지만, 황폐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지구 표면을 둘러싼 3㎜의 흙이 매년 황폐화되고 있다. 1㎝ 높이의 흙이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200년 이상인 반면, 같은 양의 흙이 단 3년여만에 유실되고 오염되고 훼손되는 것이다.

 흙의 위기는 곧 인류의 위기다. 흙에서 나오는 농산물의 안전과 국민의 건강, 나아가 인류의 미래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흙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흙 살리기는 농업계나 환경단체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식생활을 바꾸는 행동으로 누구나 흙을 건강하게 되살릴 수 있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로 식단을 꾸리고 남김없이 먹는 저탄소 식생활을 통해서다. 친환경 농산물은 화학비료를 이용해 재배하는 농산물보다 탄소배출이 적다.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면 유기농업의 기반이 확대돼 흙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남김없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1년에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13억 톤이며, 여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만 33억 톤에 달한다. 하루 세끼를 남김없이 먹는 것만으로도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도움이 된다.

 흙의 날 제정을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흙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구상의 어떠한 생명체도 흙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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