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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9
삶의 유희(Nothing Permanent, but···) 9
  • 사진작가 임창준
  • 승인 2023.08.29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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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Wilderness(광야에서)
그림1.  In the Wilderness(광야에서), 100x10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그림1. In the Wilderness(광야에서), 100x100cm, Pigment Print with mixed Media,~

광야는 '평야', '개활지' 등과 동의어이며, 그 뜻을 풀이해 보면, 씨 뿌리지 못하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야생 짐승들이 울부짖는 황무지, 삭풍이 부는 물 없는 사막, 적에게 패배당한 후 황량해진 버려진 땅, 텅 비고 길이 없는 곳 등으로 종합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수도자와 현자들은 광야를 찾아 외롭게 은둔하며, 묵상하고 기도한다. 

성경 속 많은 위인도 광야로 내몰리곤 했다. 모세는 왕궁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뒤로하고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다윗도 왕이 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바위와 광야에서 지내야 했으며, 엘리야는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기적을 일으킨 후 광야로 갔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지냈고, 심지어 예수님조차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머무르셨다.

부정적인 의미의 광야는 고난과 고통의 장소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 바라보면 그곳은 은혜를 받는 곳이며, 진정한 자아를 만들 수 있는 장소이다. 앞서 언급한 성경 속 많은 위인을 생각해 보면 광야에서 재생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메마르고 살기 힘든 세상과 인생은 흔히 광야에 비유된다. 우리의 인생길은 마치 광야에 들어가서 길 잃고 헤매듯이 힘겹고, 위태롭고, 끝이 보이지 않으며 수 없이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인생, 그 광야를 어떻게 견디며 건너야 하는가?

선지자들께서 광야에서 명상하며 깨달음을 얻었듯이, 명상의 시공간을 떠올리며 그 속을 걷도록 하자. 그러면 주위의 모든 풍경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영의 세게’로 인도한다.

임창준 작가
임창준 작가

이 작품은 2018년 김제 간척지 갈대 들판에서 촬영하였다. 본 작품 속에는 수평선이 모호한 하늘 같은 바다, 바다 같은 하늘 아래, 거친 갈대 사이에 앉아 명상하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담았다<그림1>. 

사진 속의 수도자는 돌과 같다. 그는 돌에서 영원한 에너지와 시간을 모으고 응축하여 시공간을 넘나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으며 자연과 공명한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고요의 경지, 즉 절대자와의 공감대를 은유한다.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 빛을 어둡게 조정하였다. 조용히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세상 어려움이 부질없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수도자의 시선은 늘 내세와 영생을 향해 있고, 현실과 피안을 넘나든다. 그는 돌이 되어 크고 작은 우상들을 마음속에 쌓고 사는 어리석은 현대인들을 이끌어준다. 어두운 광야 속에 앉아있는 수도자를 보고 있으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제복 사이로 손을 내밀어 당신을 이끌어 줄 수도 있다. 광야 속에 앉아있는 수도자의 존재와 나의 관계를 초현실적으로 감각하다 보면, 내가 선 이곳이 진정한 세계이자 기적과 신비의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사진= 임창준 이엔이치과 원장, 무늬와공간 갤러리 대표(bonebank@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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