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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의학에세이[21]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김영진 의학에세이[21] 현대의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 김영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고려대 의료법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치의학박사
  • 승인 2020.07.20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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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래를 향한 도전-3
김영진 박사
김영진 박사

 선천적(Congenital=Inborn=Acquired)이라는 것은 수태 당시에는 정상이었으나 수태 이후에 태반 속으로 유입된 어떠한 외적 요인에 의하여 태아에게 일어나는 이상을 말한다. 이는 수태 당시부터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인 인자를 내포하고 있는, 즉 염색체 속의 유전자에 의해 유래된 유전적(Hereditary)이라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구별이 불가능했던 과거 인류 역사 이래로 선천성 기형은 신의 뜻이며 인간은 이와 같은 운명에 대항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동시에 임신부에게 치료목적으로 투여한 약물이 태반 장벽을 통해 태아의 순환기 내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태반조직은 신진대사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어서 모체와 태아의 순환계 사이에 있는 강력한 보호막인 태반 장벽의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원래, 태반은 모체로부터 태아의 순환계 내로 전달되는 독 물질에 대한 방어벽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매우 높은 지용성을 갖고 있는 특정한 약물은 쉽사리 태반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 또한, 매독을 일으키는 스피로헤타 균이나 AIDS를 일으키는 HIV바이러스 역시 쉽게 이 장벽을 통과하여 태아를 감염시킴으로써 선천적 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각종 애완동물도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원인은 기생충의 일종인 톡소플라스마 때문이다. 특히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TORCH 감염증 중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톡소플라스마 증(toxoplasmosis)은 ‘toxoplasma gondii’라는 원충류에 의해 발생하는 다발성 전신질환이다. 보존 처리된 식품이나 날음식, 덜 조리된 육류 등을 즐겨 먹는 여성은 톡소플라스마 증에 이환될 위험이 다른 임신부보다 높다.

 포진성 바이러스 감염이나 톡소플라스마증과 같은 두 가지 질환은 주산기에 심한 이환율과 사망률을 나타내는데 이에 이환된 신생아의 10~15% 정도는 사망하고, 50%는 1년 이내에 시력장애를 초래하며, 85%는 2~4세 사이에 심각한 전신 운동장애와 정신 지체를 보인다.

 심한 톡소플라스마 증은 조산, 성장지연, 소두증, 수두증, 맥락망막염, 혈소판 감소증, 중추신경계 석회화, 황달 및 발열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점상출혈과 반점상 발진도 초래한다. 그러나 일부 임상 증상은 오랫동안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수십 년 전에 온 세상을 들끓게 했던 신경안정제의 일종인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선천적 기형아사태는 매우 유명한 것으로, 이 약을 생산한 제약회사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즉 1957년에 독일에서 개발되어 이상적인 입덧 치료제로 발매되었던 탈리도마이드는 수많은 기형아를 출산하게 하는 역사상 최악의 약물 부작용을 일으켰다.

탈리도마이드 기형아의 모습.
탈리도마이드 기형아의 모습.

 특히 임신 24~42일 사이에 입덧 약으로 단 1회만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경우에도 사지결손을 비롯한 기형아가 100% 발생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1950년대 말에서부터 60년대 초까지 전 세계 46개국에서 발생한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사지결손 기형아 수는 1만 명을 훨씬 상회했다.
 1960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 심사관이었던 ‘프랜시스 켈리’는 임상 시험 결과로 볼 때 이 약물이 태아의 신경 발달장애에 미치는 안전성의 근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탈리도마이드의 미국 내 시판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후 1년 만에 탈리도마이드로 인한 피해가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그의 판단이 얼마나 옳은 것이었는지 증명되었다.

 미국에서는 시판허가심사 이전에 제약회사가 의사들에게 샘플로 나누어준 약으로 인해 오로지 17명의 기형아만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전 인류는 발생 가능한 선천적 장애의 확률을 낮추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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